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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신청율과 무죄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내외에 걸쳐 분분한 물의를 일으켰던 이른바 구속 영장 신청 파동은 간신히 수습의 실마리를 찾은 듯 하나, 이를 계기로 드러난 또 하나의 교훈은 구속 영장 신청율이 지나치게 높아 이에 따른 검찰의 기소 정책 및 공소유 지방법 등에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번 영장 신청 파동 이후인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시경 산하 각 경찰서가 검사의 이름으로 법원에 신청한 구속 영장은 모두 6백1건으로 이 가운데 4백77건 (79·3%) 이 발부됐다고 한다.
대법원의 70년 중 연간 통계를 보면 검찰의 구속 영장 신청 건수는 13만4천3백94건인데 발부 건수는 12만6천83건이고 구속 기소된 것은 5만7천7백49건밖에 안 된다. 이것은 영장 신청 건수의 43% 밖에 구속 기소되지 않았음을 나타낸 것이요, 7만명이 무고하게 구속되었다는 결과가 된다.
이것은 또 법원도 검찰이 청구한 영장에 대해 「협조」의 도가 지나쳤음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여 법원은 70년 중에 검찰이 청구한 구속 영장 신청 13만4천여건 중 8천1백 사건 밖에 기각하지 않았으므로 기각율은 겨우 6%밖에 안 되는 것이다. 반면에 구속 적부 심사가 청구된 사건에서는 법원이 그 반수 이상을 석방하고 있으므로 법원의 영장 발부조차 신중하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68년도의 구속 적부심 심사 건수는 1만3천11건인데 석방은 6천4백10명, 기각이 5천2백18명으로 그 비율은 약 6대 5가 되고 있다.
사법 경찰은 웬만한 사건은 구속 석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과거 일제시대의 폐풍이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고, 또 경찰관들의 수사 능력에 중대한 미숙이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우리 헌법은 불구속 기소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구속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형사 소송법 체계의 모체라 할 수 있는 미 국법 하에서는 살인범조차도 불구속기소 되거나 보석되어 재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구속된 피의자는 자신의 방어에 필요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 없는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당사자 대등의 원칙 하에서 검사나 피고인이 다같이 대등한 입장에서 공격·방어하여야 하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오히려 피고인을 무조건 구속되어 사전적인 처벌을 받는 것이 원칙처럼 돼버린 것이요, 이러한 폐풍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편 검찰이나 사법 경찰관의 무절제한 인신 구속이나 기소 등은 형사 보상 액수가 적은데에도 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형사 보상액을 현재의 1백원에서 적어도 벌금의 1일간 노역 대체액 정도로 올리고 형사 보상을 해 주도록 하여야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당한 피의자나 피고인에게는 사법 경찰관이나 검찰관의 불법 행위를 이유로 국가 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허용할 필요조차 있다할 것이다. 그것만이 사법 경찰관이나 검찰에 의한 불법 행위를 제도적으로 억제하는 방편이 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실정 하에서 우리 나라 사법상 형사 사건의 무죄율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 68년엔 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된 것이 2백67명이던 것이 69년에는6백98명으로 2배 이상 늘었고, 70년에는 4배인 9백3명으로 늘어났으며, 71년에는 서울 형사지법 항소 3부에서만도 22명이나 무죄가 선고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법원이 정풍 운동의 결과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물리치겠다는 결의가 새로워진 때문이라는 평을 듣게 했던 것이다.
최근에 발표된 통계를 보면 어떤 검사는 연간 80여건의 무죄 기록을 나타내고 있다. 연간 6건 이상의 무죄를 낸 검사만도 2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무죄율의 증가에 대하여 검사는 깊은 반성을 하여야하며 도리어 판사에 대한 고난의 자료로 삼음은 언어 도단이라 할 것이다.
검찰은 인신 구속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가일층의 노력을 해주기 바란다. 이번 현직 판사들에 대한 영장 신청 사건은 그 사건 자체를 떠나서라도 또 하나의 교훈을 남겼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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