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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검 대립 다시 경화|파동 4일째 법원·검찰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현직 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계기로 완전 대립된 검찰과 법원의 긴장감은 민 대법원장의 사태수습 선언과 검찰의 영장 청구 보류로 사태수습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으나 30일 하오 서울 민사지법 판사들에 집단 사표를 제출하고 검찰에 의한 사법권침해 실례를 낱낱이 들어 이의 시전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발표함으로써 사법파동 4일째로 접어든 31일 상오 다시 사태가 악화된 채 팽팽한 분위기에 싸였다. 검찰은 31일 상오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이 지적한 사법권 침해실례에 대해 간부회의를 열고 『이것은 양식을 가진 검찰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있을 수 없는 일로서 법원 측의 독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나섰고, 형사지법 일부 판사들은 휴가임에도 출근, 대책을 논의했고 서울고법판사들까지도 31일 상오 모임을 갖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형사지법 판사들에 이어 집단사표를 낸 민사지법 만사들은 31일 정상출근, 서로 모여 사법권의 수호를 위한 투쟁에 민·형사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면서 검찰이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시정하지 않는 한 법 관직을 떠날 결의를 다짐하기도 했다.
대법원장의 사표 반려를 거부한 형사지법 판사들 중 이날부터 휴가인 김인중 판사 등 5, 6명은 출근, 『휴가 갈 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나왔다』면서 사법권의 수호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조급하게 굴지 않고 의연하게 투쟁하겠다고 투쟁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또 민사지법 박승호 수석부장 판사와 허규 부장 판사는 이날 출근하자마자 만나 대법원장에 낼 검찰의 시정건의안을 정서 했다.
검찰청 주변은 민사지법 판사들까지 사표를 내자 더욱 침통한 분위기에 싸였다.
이날 상오 9시55분쯤 평소보다 늦게 출근한 서울지검 김용제 검사장은 「회의 중」팻말을 내걸고 의부인사면회를 사절한 채 박종훈 서정각 두 차장검사를 불러 30분 동안 상의했다. 박 차장 검사 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겠다고 자청, 굳은 표정으로 서울 민·형사 지법판사들이 시정을 건의한 「검찰의 7개 사례」에 대해 『있을 수도, 있지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 차장검사는 판사와 뿌리를 같이한 검사가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협조하는 뜻에서 가진 인간관계를 사법권에 가한 압력의 사례로 폭로한데 대해 유감이라며 열을 올리고 법관들의 폭로에 시비를 걸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국민의 곡해가 없기를 바라는 뜻에서 해명하는 것이라고 7개 사항을 거듭 해명했다.
전태명(수석부장판사는 『판사들이 돈이 탐나면 당장 나가 변호사를 할 것』이라고 열을 올리고 『소위 관계라는 것을 들춰 큰 부정이라도 한 것처럼 몰아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짓』이라고 비통하게 말했다.
전재원 서울 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31일 하오『이번 사법파동이 어려운 여건아래 최선을 다해온 법원이 검찰과 충돌한 인상을 준 것 같으나 검찰에 의한 사법권 침해가 그 동기다』라고 밝히고 앞으로 법관의 판결에 대한 음성적인 박해를 단호히 시정해 줄 것과 이 사건에 관계된 검찰 인사에 대한 단호한 책임 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건의문을 민 대법원장에게 낼 것이라고 밝혔다.

<파급 적게 설득 계속>민 대법원장 박대통령과 만나겠다
민복기 대법원장은 이날 상오에도 김병화 법원행정처장·이병호 차장과 30일에 있은 서울 민사법원 판사 등의 집단 사표제출에 대한 보고를 받고 사후 대책을 논의했다.
대법원의 한 고위관계자는 현 상태로는 뚜렷한 사태수습책이 없으나 더 이상 법관들의 집단행동이 번지지 않게 설득을 계속하고 심각한 법관들의 검찰에 대한 불만을 법무 당국자와 협의, 서로의 오해를 풀려고 하는 것이 현재의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한편 사표를 낸 서울 형사지법 판사들을 대표한 김인중 최영도 김공식 목요상 금병훈 홍성수 판사 등 6명은 30일 하오 민 대법원장을 만나 자신들이 사표를 낸 것은 동료 법관의 구명을 위한 것이 아니고 지금까지 검찰로부터 받아온 유형무형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이번 사법파동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사법권의 독립이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해 줄 것을 건의했다. 민 대법원장은 『내가 전 책임을 지고 사태를 수습할 터이니 맡은 직무에 힘쓰라』고 말하고 『빠른 시일 안에 박 대통령과 신 법무장관을 만나 판사들이 건의한 애로 등 참고사항을 토대로 사태수습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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