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형사지법 판사 39명 사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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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검찰이 현직법관 2명을 수뢰혐의로 입건,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건은 28일 이에 충격을 받은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의 일괄사표 제출에 뒤이어 『사태가 우리들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진전된다면 신분상 극한적인 사태가 있을 것』이라는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의 성명서 발표와, 『앞으로 검찰수사에 의한 법원 직원들의 인권침해가 없도록 보장해 달라』는 서울형사지법 일반 직원들의 연쇄집단행동으로 번졌다. 이 사태는 29일 새벽 검찰에서 혐의사실만 구체화한 같은 내용의 영장을 다시 신청함으로써 더욱 팽팽하게 됐다.
서울형사지법 판사들은 28일 하오 합의 8부 판사실(726호실)에서 비공식모임을 갖고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사법권의 독립을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소신에 따라 사퇴한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유태흥 수석부장판사 이하 전원이 사표를 써서 송명관 원장에게 제출했다.
이날 하오3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회의를 끝내고 나온 판사들은 각각 판사실로 돌아가 즉석에서 사표를 쓰고 유 수석부장판사에게 전달, 유 수석부장판사가 사표를 모아 송 원장에게 제출했다.
원장을 제외한 41명의 판사들 중 입건된 이범렬 부장판사·최공웅 판사와 즉결심판소에 나가 있는 최만항 부장판사·정광진 판사를 제외한 37명의 법관들이 일괄사표를 냈으나 26일 최·정판사도 사표를 내 모두 39명이 됐다.
이들은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사법부 독립에 큰 위협을 주는 것이며 잇따른 법원의 무죄판결이 내리자 이에 대한 보복조처의 인상이 짙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각자 소신에 따라 사표를 낸 것이라고 했다.
사표를 낸 판사들은 『사표가 수리될 때까지는 계류중인 사건을 재판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지검 공안부 이규명 검사는 28일 상오0시50분에 신청한 서울형사지법항소3부 재판장 이범렬 부장판사(38)와 동배석 최공웅 판사(32)등 참여서기 이남영씨(34) 등 3명에 대한 뇌물수수혐의의 구속영장이 이날 하오2시30분쯤 서울형사지법 유태흥 수석부장판사에 의해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자 29일 상오2시32분 범죄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기재하여 다시 신청했다.
검찰은 ①이 부장판사의 제의로 하경철 변호사와 음주·접대부와 동침했고 ②선물로 받은 표고버섯은 이방택 피고인의 부인 전효희씨가 하 변호사에게 전달, 이 부장판사가 수뢰했다는 등 범죄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쓰고 향응을 받은 것이 이 부장판사의 제의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뿐 범죄의 기본적 사실이 변동됐거나 새로운 증거보강은 없었다.

<백종무 부장판사 재신청 영장심리>
재 신청된 영장은 29일 상오 서울지방법원항소2부 백종무 부장판사에 의해 서울지검공안부 이규명 검사가 이범렬 부장판사 등 2명에 대한 뇌물수수혐의의 재 청구한 구속영장을 법원장으로부터 배당 받고 심리에 들어갔다.
백 부장판사는 『동료판사이기는 하나 먼저 기각된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지검은 두 번째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것에 대비, 김용제 지검장과 최대현 공안부장·검사 이규명 검사가 29일 상오11시 대책을 논의했다. 이봉성 검찰총장도 이날 상오 신직수 법무부장관을 만나 앞으로의 대책 등을 논의하고 대검간부들과 의견을 나눴다. 검찰은 이번 법관들의 수뢰사건이 액수는 적지만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피고인 가족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라는 점에 중시, 당초의 방침대로 강제수사의 태도를 밀고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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