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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민, 잠시 멈추어 앉다 책을 놓고 선에 취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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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혜민 스님이 미국대학 교수직을 잠시 접고 지난달 초 한국 선방에 들었다.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꼬박 한 달간 화두와 씨름했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혜민(40) 스님이 처음으로 한국 선방(禪房)의 참선 수행에 나섰다. 선불교의 본산(本山) 격인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다. 9월 한 달을 꼬박 다른 스님들과 침식을 함께했다. 우리 시대 선지식(善知識·수행이 높은 스님)으로 평가받는 적명(74) 스님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문경 봉암사서 첫 선방 수행

혜민 스님

 혜민 스님은 하버드·프린스턴 등 미국 대학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이 과정에서 출가했다. 서구의 합리적 시각으로 불교를 본다는 얘기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 선방의 풍경은 어땠을까. 지난 17일 봉암사에서 그를 만났다.

 - 2000년에 출가해 2008년 정식 승려가 됐다. 그런데도 선방 수행이 처음이라니.

 “부끄럽게도 사실이다. 단기 수행 프로그램에는 더러 참가했는데 다른 스님들과 선방에서 생활한 적은 없다.”

 - 미국 햄프셔대 종교학과 교수다. 수행 때문에 이번 학기 휴직한 건가.

 “겸사겸사다. 트위터, 토크 콘서트에 집중하다 보니 눈길이 자꾸 바깥으로 향했다. 스스로 부족한데 누구에게 뭘 조언한다는 게 우습게 느껴졌다. 내 책 제목처럼 일단 멈추기로 했다. 자신을 성찰하고 수행도 깊이 하고 싶었다.”

 “왜 하필 봉암사였느냐”고 묻자 스님은 “수행자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봉암사는 청정한 정진 기운이 넘쳤다고 한다. 스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 밤 9시에 잠자리 들 때까지 하루 10시간씩 참선했다. 전 재산이 사과박스 두 개를 못 채우는 스님, 한 달 휴대전화 사용시간이 40분이 안 되는 스님들을 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봤다고 한다.

 - 적명 스님은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 않는다. 신비롭기까지 하다. 어땠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진력이 엄청난데 그걸 잘 드러내지 않는다.”

 - 어떤 대목에서 정진력을 느꼈나.

 “자신이 아는 바를 쉽게 설명하는 데 탁월했다. 수행 중 막힌 대목을 말씀 드렸더니 바로 내 상태를 알아차리고 해법을 제시했다.”

 - 무슨 내용이었나.

 “사람의 본성 자리는 원래 청정하다. 그걸 온전히 보다 보면 문득 주인공은 자기뿐이라는 걸 안다. 온 세상은 그 바탕 한자리다. 한데 그 주인공은 형태 없이 텅 비어 있다. 죽은 것 같지만 그 텅 빈 놈은 살아 있다. 쉽게 풀면, 모든 게 내 마음 안의 연극이라는 거다. 나는 저 물소리가 들리는 계곡에도 두루 있다. 이런 걸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그 경지에 도달하는 건 다르다. 그게 내 문제였다.”

모든 건 마음의 연극 … 몸으로 깨달아

 이 대목에서 스님의 얘기는 좀 복잡해졌다. 살림살이(공부 정도)를 공개하는 게 민망하다고 했다. 거듭 묻자 적명 스님이 ‘명연무지(冥然無知)’라는 일구(一句)로 ‘아는 불교’와 ‘깨달은 불교’ 사이에 갇힌 자기를 구했다고 했다. 어두워 모르는 자리, 나라는 주관과 타자라는 객관이 분리되지 않은 자리, 언어도단의 깨달음의 상태를 말하는 듯 했다. 논리가 아니라 고도의 직관으로 단 번에 깨우쳐야 하는 경지일까. 스님은 “눈 앞의 대상에 집착하는 의식을 돌려(회광반조·回光返照) ‘그 놈’을 향하되 분별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했다.

 - 해보니 어떤가. 화두참선의 특징은.

 “정말 수승(殊勝)한 수행법이다. 위파사나는 대상이 있다. 주객으로 나눈다. 간화선은 처음부터 주객이 없는 데서 출발한다. 어떤 질문의 답을 모르는데 찾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시작부터 모든 게 한통속인 마음의 근본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 친절한 스승은 드물지 않나.

 “정말로 간절히 원하면 만나게 돼 있다. 희한하게도 이 우주는 그런 걸 해결해준다.”

 스님과의 대화는 한동안 더 이어졌다. 그는 “앞으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인생은 한바탕 꿈, 일종의 역할극”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봉암사 계곡 물소리가 선명했다. 

봉암사(문경)=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봉암사=신라시대 879년에 창건된 선종 사찰. 1947년 성철·청담·자운 스님 등이 부처님 뜻대로 살자는 봉암사 결사를 통해 위기의 한국불교를 지탱했다. 수행정진을 위해 사월 초파일을 제외하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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