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도를 꿈꾸는가, 그러면 신념 끝까지 밀고 나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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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르셸 교수는 “어렸을 땐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안 했다. 대신 무엇을 하든 1등을 해보자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고 노벨상까지 받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지난 9일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지목 된 아리에 와르셸(73)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교수는 현대 생명과학 분야의 기반을 닦은 학자로 꼽힌다. 그는 1970년 초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효소(단백질)의 화학 작용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참(CHARMM)’을 개발했다. 그 이전까지의 화학 연구는 실험실에서 화학 반응을 직접 관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와르셸 교수의 프로그램 등장 이후엔 단백질의 분해 과정을 컴퓨터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지금은 널리 알려진 꼬인 리본 모양의 단백질 구조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는 제약회사의 신약 개발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론적 토대를 만든 마틴 카르플루스(83) 하버드대 교수와 프로그램을 함께 발전시킨 마이클 레빗(66) 스탠퍼드의대 박사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와르셸 교수가 노벨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29일 고려대가 주관하는 ‘미래 과학 콘서트’에서 청소년 700여 명에게 강연하기 위해서다. 강연을 하루 앞둔 28일 그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백주년기념관에서 만났다.

 - 연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70년대에는 지금보다 컴퓨터 성능이 떨어졌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을 시도하면 그 다음 날에야 결과를 받아들 수 있었다. 오류 하나를 확인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또 당시 연구 방법으로는 단백질처럼 큰 분자의 활동을 컴퓨터로 분석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 연구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이 힘들었다.”

 와르셸 박사는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태어나 와이즈먼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대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우연찮게 공과대학에 진학했다가 세계적인 업적을 쌓게 됐다.

 - 세계적인 과학자가 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어렸을 땐 과학자가 되겠다는 생각도 안 했고 노벨상이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내 분야에서 1등을 해보자는 생각은 항상 갖고 있었고 노벨상까지 받게 됐다. 내 딸들에게도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떤 분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래에 무엇이 중요해질지 아무도 모른다.”

 - 한국의 과학 발전을 위해 조언한다면.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와 노력을 믿고 기다려 주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주로 나라에서 연구비를 지원 받았는데 비용이 크게 모자란 적은 없었다. 내가 속한 대학으로부터 연구 성과를 내라는 압력도 거의 받지 않았던 것 같다.”

 - 과학도를 꿈꾸는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한마디해 달라.

 “과학계는 밖에서 보는 것처럼 이상적인 분야는 아니다. 기존 연구 방법과 다른 방법을 택하면 경쟁자들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옳지 않다’ ‘틀렸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스스로의 신념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근성이 필요하다.”

글=이유정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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