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졸속 봉합 우려되는 방위비 분담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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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년부터 적용될 제9차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한·미 양국 간 고위급 협의가 이번 주 서울에서 열린다. 올 들어 양국 대표단은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다섯 차례의 협상을 벌여왔지만 진전을 보지 못했다. 입장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를 감안하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자칫 시한에 쫓겨 이견을 대충 봉합하고, 국회는 고무도장 노릇이나 하는 전례를 답습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려진 바로는 분담금 제도 개선과 내년도 분담금 총액, 협정 유효기간, 연도별 인상률 등 네 가지가 주요 쟁점이다. 특히 미국 측의 분담금 미집행이나 이월, 전용 등 투명성 논란을 야기해 온 제도적 문제점을 둘러싸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한국 측과 현행 제도를 고수하려는 미국 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분담금 총액과 관련해서도 양측 주장 사이에 2000억원 이상 차이가 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할 경우 사상 처음으로 연간 분담금이 1조원을 넘을 거란 얘기도 들린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유지에 필요한 경비의 일부를 우리가 부담하는 것이다. 한국의 방위에 기여하는 미군의 역할을 생각하면 지나치게 까다롭게 굴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담금은 엄연히 국민의 혈세에서 나가는 돈이다. 어디에 얼마를 어떻게 쓰는지는 알고 주는 게 당연하다. 집행하지도 않고 쌓아둘 돈을 달라고 국민에게 손을 내밀 순 없는 일 아닌가. 마땅히 정부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방위비 분담금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미국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지만 어렵기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올해 세수 부족액만 1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한·미 동맹의 유지·발전을 위한 분담금 협상 결과가 오히려 한·미 동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초래한다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을 것이다. 양측은 협상 시한을 좀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만큼은 제도적 문제점을 바로잡아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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