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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현실화…「권」의 핵분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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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소·중공·일·서구 등 「다섯 개의 힘의 중심지」에 의한 세계운영-.
「닉슨」대통령은 6일 이것이 향후 5∼10년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가까운 장래에 세계는 5개의 세력권으로 분할된다는 얘기이다.
「닉슨」의 이번 발언은 국제정치 추세의 예진이라기 보다 기정사실의 인정이라는 인상이 짙다. 세계의 힘은 사실상 이미 다원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원화된 힘이 영향권의 설정으로 전개된다는 것은 참으로 착잡한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 4반세기를 끌어오던 이른바 「얄타」체제가 전면적으로 재편된다는 점이다. 유엔안보리의 5개 상임이사국을 형식적 바탕으로 삼고 그 위에 미·소 양두체제를 세웠던 것이 「전후질서」의 특징이었다면, 이의 재정립은 이 낡은 질서의 형식과 실질을 한꺼번에 뜯어고치는 셈인 것이다. 세계의정에 대한 「비트」권이 부여되었던 미·영·불·소·중화민국가운데 중화민국은 탈락되고 영·불은 소숫점 이하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세계정치의 이와 같은 전개는 이미 사라진 듯이 보였던 제국주의시대의 유령들을 되살아나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험성이 부인된다할지라도 「윌슨」대통령 이래 끊임없이 진화되어왔던 『소숫점 이하가 없는 선의의 세계의정』사상은 발붙일 곳을 잃은 것이다. 「모겐도」의 말대로 「파워·폴리틱스」(힘의 정치)가 국제정치의 최종척도임이 또다시 증명되었다 할까….
사실 미·소 대립이 도덕적 차원에서 해석되던 시대는 50년대에 끝났다. 이것은 두 개의「힘」에 의한 극과점적 권력정치시대가 『이미 있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이번의 「닉슨」발언은 또 한차례의 탈바꿈을 예고하는 것이며 아직도 50년대식 도덕적 해석만 일삼는 국가들이 『두 시대나 뒤지고 있음』을 일깨워줬다.
세째, 이번에 지적된 5개권의 「중심국가」들이 군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핵보유국이거나 개발능력의 보유국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핵확산의 경계선 설정 및 핵에 의한 세계의 과점적 분할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설은 「닉슨」의 이번 구상이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 새로운 문제의 제기라는 얘기와 통한다.
이와 같은 진단은 「닉슨」의 이번 구상에도 불구하고 인도·「아랍」권·「아프리카」·인니 등이 여전히 문제의 불씨로 남게된다는 데서도 반증된다. 5억5천만 인구를 가진 인도나 세계의 동력원구실을 하는 아랍권은 그 성질상 어떤 특정국가의 영향권속에 집어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힘의 중심국가」니 「영향권의 설정」이니 하는 논리가 형태를 달리한 식민정책으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권의 설정에 의해서 『무력경쟁을 경제경쟁으로 유도하겠다』는 얘기가 「권의 경제적 유기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어떤 국가의 영향권이 인정된 뒤 그 안에서 진행되는「주변」과 「중심」간의 분업과 협조 그리고 경제적 유기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근대의 「유럽」팽창사가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의 경우 가장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정학상 두 개의 「힘의 중심지」사이에 끼어있으며 분단이 기정사실로 되어있다는 특수상황은 통일외교의 폭을 훨씬 좁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힘의 중심지」간에 진행될 대화는 국제도의보다 국가이익을 축으로 삼는 전형적 열강정치로 될 공산이 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갖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다원화의 긍정은 한반도에 새로운 활기를 줄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얄타」체제가 안겨준 양자택일의 좁은 선택보다는 얼마만큼 숨통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은 구한말이래 처음으로 「다소 자유로운 손」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홍사덕기자>

<세계사 속의 「권의 변천」 약사>
▲교황「알렉산더」6세의 세계양분(1494)=「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식민지쟁탈전이 격화하자 대서양상의 자오선을 중심으로 동쪽은 「포르투갈」·서쪽은 「스페인」에 갈라줌으로써 중재.
▲「파리」조약 1763)=영·불간의 식민지문제를 둘러싼 7년 전쟁 뒤 미국 「캐나다」 인도 등이 영국 손에 들어감.
▲「빈」회의(1815)=「나폴레옹」전쟁 뒤 노·영·불·오·「프르이센」의 5대국 열강시대를 마련.
▲「베르사유」조약(1919)=영·미·불·일·이의 5대 열강체제 완성. 이것은 1921년 「워싱턴」군축회의에서 재확인됨.
▲「히틀러」의 「마인·캄프」구상=독일인에 의한 「슬라브」족, 즉 「러시아」의 지배를 주장했으나 영·미·일·이의 영향권 소유를 인정. 반대로 「스탈린」은 독일을 제외한 미·소·영·일의 세계 4분안을 2차대전 중 제의.(「번즈」저 미국외교비사)
▲「얄타」회담=미·소·영·불·자유중국 등 안보상임이사국을 형식적 바탕으로 한 미·소의 실질적 양분체제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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