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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내각 1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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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행정의 요리를 터득하려면 아직 요원한 것 같다』-. 3일로 취임한 달을 맞이한 김종필 국무총리는 그 동안의 성적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자평을 했다.
지난 6월4일 청와대에서 총리 임명상을 받고 내려온 직후 비서실 순시를 하고 행정부 현황을 보고 받는 등 임명 즉시 집무에 뛰어든 김 총리는 행정 파악에 대단한 의욕을 보였다.
김 총리는 어떤 경우 하루 2개 부처씩 겹쳐가며 20여개 주요 부처에 대한 현황 파악을 6월중에 거의 마쳤다.
그 동안의 정치 경력에서 행정에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부처별 보고를 듣다가도 미심한 점은 꼬치꼬치 캐어물어 납득이 가야 넘어가고 서류 결재를 할 때도 설명만 듣는게 아니라 직접 내용을 읽어 확인한 후에야 「사인」을 할 정도로 꼼꼼하게 처리한다는 것.
김 총리의 행정 파악 진도는 손님 접견 때문에 상당히 늦추어졌다.
취임 초 각계에서 밀려오는 하객들로 총리실 주변은 연일 성시를 이루었는데 1주일 동안에 7백여명에 이르러 하루 1백여명이 다녀간 셈이 된다.
이렇게 숱한 방문객 접견에 시간을 뺏겨 정무를 보는데 지장이 있게 되자 김 총리는 지난 6월14일 『의전실을 통해 미리 접견 약속이 되지 않은 방문객은 면담을 사양하도록』 비서실에 지시, 방문객을 통제하기까지 했다. 이런 조치가 있은 뒤에도 한동안 방문객이 계속 밀려 아침엔 접견실에 10여명, 많을 땐 20여명이 앉아 기다리다가 되돌아가곤 했다.
김 총리가 취임한 후 한달 동안 처리된 큰 문제는 학원 문제, 차관 및 도지사 인사, 환율인상과 금리 조정 등이다.
그 가운데 가장 김 총리가 신경을 쓴 것은 학원 정상화 문제로 그는 민관식 문교장관과 해결 방안에 관해 여러 차례 만나 논의했고, 한심석 서울대 총장과 점심을 같이하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중요한 문제의 해결은 소관 부처 장관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총리가 직접 「태클」하여 풀어나가야 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김 총리는 섬유류 규제 교섭 때문에 내한한 「데이비드·케네디」 미 특사와 점심을 나누며 한국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각부장관들과 만나는 것도 국무회의나 정무 보고 석상으로 국한하지 않고 거의 매일 점심시간엔 3, 4명의 장관과 식사를 들며 업무를 협의한다.
김 총리는 국무회의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에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지시를 하는 일이 많다.
이와 같이 공식석상이나 사석에서 장관들과 활발한 의견 교환을 갖는 「J·P·스타일」 은 김종필 내각의 성격을 형성하는 것 같다.
정무를 벗어나서도 김 총리는 분주했다. 취임 초부터 거의 매일 저녁 열리는 축하 「리셉션」에서 김 총리는 전경련·대한상의·5·16 혁명 주체·학술원·예술원·「보이·스카웃」·예총 등 각계 사람들과 교환했다.
대학 미술 전람회에 나가 입선 작품의 사진판 출판비 4백만원을 주선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학술원·예술원에 50여권으로 된 「서구의 명저 대선집」(질당 18만원)을 각 1질씩 기증하기도 했다.
이렇게 활발한 움직임을 하면서도 신문에 대해서는 몹시 신중하다.
자신에 관한 기사가 나는데 신경을 쓰고 출입 기자와 갖는 취임 첫 기자 회견도 한달 이상 미루어왔다.
새 내각의 총리를 해야할, 그리고 하고 싶은 일에 의욕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오늘의 정치기상에 조심스럽게 처신해온 첫 1개월이었다고나 할까.
과거의 정 내각이 인화 내각이고 백 내각이 안정 내각인데 비해 김 내각은 실력 내각을 자부하는 듯한 인상.
내각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국무회의에서의 일 처리 과정에서도 이러한 차이가 엿보인다.
정 내각 때 국무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놓고 장관들 사이에 논쟁이 붙으면 당시의 정일권 총리는 웃음을 띤 얼굴로 『나더러 재판장이 되란 말인가요. 어떻습니까, 바쁘지 않은 것이면 다음으로 넘깁시다』고 해서 부드럽게 넘겼다.
김 총리는 이럴 경우 충분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장관들의 토론을 계속시키고, 그 결론에 따라 수정하거나 그냥 통과시키더라도 『문젯점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는 식으로 매듭을 짓는다.
장관들의 집무 「스타일」은 내각의 성격보다는 개성에 따라 각양각색인데 신임 장관이 많은 김 내각엔 특히 다양한 편.
자기 소관 외의 일엔 별로 말이 없는 실천형으론 태완선 건설·신상철 체신부장관을 들 수 있고 김용식 외무장관도 남의 부처 일엔 나서지 않는다.
이에 비해 오치성 내무장관은 다른 부처 일에도 직선적인 의견 개진을 많이 하는 편이고 이병옥 무임소 장관도 당과 정부간의 교양력답게 말을 많이 하는 편.
정무 보고를 또박또박 잘하는 행정가형은 법관 출신의 이경호 보사부장관이 「모델」이고 민관식 문교는 조리가 밝은 장관으로 평판이 나있다. 김학렬 부총리가 자주 「유머」를 말해 회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가 하면 윤주영 문공은 새「아이디어」와 뚝심으로 밀고 나가는「불도저」형으로 통한다.
정부 대변인으로서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안건은 모두 공표하는 걸 원칙으로 하겠다고 정한 윤 장관은 김 내각 두번째 국무회의에서 남덕우 재무장관의 「대외비」요청에 정면으로 맞서 결국은 「과소 신고 가산세 면제 조치령」을 발표한 일도 있다.
총리의 정무를 보좌하는 비서실은 전임 배두진 총리 때의 「멤버」가 유임된 채 오랫동안 김 총리의 비서역을 맡아온 한상국 (의전·정보), 김홍래 (일반 보좌), 김진봉 (국회·정당)씨 등이 1급 비서관으로 새로 임명됨으로써 보강되었다.
서인석 비서실장은 백 총리의 경질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으나 김 총리가 『함께 일하도록 하자』고 만류했다.
원래 총리실 직제에는 1급 비서관 정원이 3명이었는데 비서관 증원을 위해 1급 비서관 정원을 5명으로 늘리도록 총리실 직제를 고쳤다. <윤용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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