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차고, 치고, 굴리고 … 공 없는 인간이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2013.10.26 00:08

업데이트 2013.10.2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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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더 볼: 우리는 왜 공놀이에 열광하는가
존 폭스 지음
김재성 옮김, 황소자리
368쪽, 1만7000원

엄지손가락이 눈에 보이는 ‘뇌의 일부’라면, 공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류문명의 상징이다라는 생각에 동의하시는지. 고고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폭스의 『더 볼』은 공과 공놀이의 역사를 찾아 떠난 인류학 탐험기다.

 아직 문자를 발명하지 못한 원시시대, 인류는 생존에 필수적인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저장했을까. 외우기 좋은 형태로 만들어 구전(口傳)하며 보존하는 시가(詩歌), 여러 동작들을 샘플링하고 부족 전체가 집단적으로 익히도록 하는 춤은 그래서 인류 문명사의 뿌리라고 불린다.

 시가는 노래와 문학, 연극으로 영지를 넓혀갔고 춤은 무용과 스포츠로 분화했으리라. 그렇다면 공은? 각종 기구를 활용하면 모든 활동이 탄력을 받는다. 가면, 의상, 신발, 문신…, 그리고 공.

 공은, 통제할 수 없는 세계를 통제하고 싶다는 인류의 소망을 구현하는 발명품이다. 인류문명사는 알 수 없는 것과 신비한 것과 미지의 세계를 관찰과 실험과 탐험과 기록을 통해 질서를 부여하고 ‘예측 가능한’ 체계로 편입시킨 역사가 아닌가. 신체동작은 우리의 의지대로 통제가 가능하지만, 공의 움직임은 통제 불가능이다. ‘공이 어디로 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하는 힘과 방향의 크기에 따라 어느 정도 공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는 있다.

2006년 6월 독일 월드컵 한국 대 프랑스 전이 열리던 밤, 서울 시청 앞에서 붉은 악마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축구 경기일 뿐이지만 그 함성은 지금도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중앙 포토]

 문명이란 자연의 반대말이다. 인공적인 요소가 가미된, 비유전적 전승체계의 총합. 공은 도구가 아니다. 실생활의 향상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류를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과 구분하는 행위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것일까.

 놀이는 어떤가. 생존과 직접 관련이 없으며 대가를 바라지 않으면서도 규칙과 경쟁이 살아있는 체계. 공은 오직 놀이를 위해서 생겨난 발명품이다. 물론, 저자가 지적한 대로 돌고래나 유인원들도 놀이를 즐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공을 만들었고, 공과 더불어 삶을 이어갔다.

옛날식 축구인 ‘바(Ba)’는 스코틀랜드 오크니 제도가 고향으로 양편으로 갈린 대규모 군중과 톱밥 넣은 공 한 개가 전부인 경기다. [사진 황소자리]

 존 폭스는 선사시대부터 고대 이집트, 검투사들이 활약했던 로마시대를 지나 궁중 실내경기였던 테니스, 인디언 민속경기에서 발아한 라크로스, 현대스포츠인 야구나 미식축구, 농구의 발생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추적한다. 스코틀랜드 오지의 섬으로부터 멕시코 밀림, 중세유럽마을과 왕궁으로부터 미국 대도시의 거대 스타디움까지를 종횡무진하며 공의 탄생과 활용과 번성의 역사를 파헤친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다. 보고서다. 과학서적이다. 신화(神話) 모음집이다. 공은 둥글다고 했다. 완전한 구체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풀과 밀랍과 두더지 가죽과 돼지의 방광과 남미 원시림의 고무수액과 코르크를 가공하는데 생애를 걸었을까.

 그래서 과학이다. 사람들은 “철갑상어의 안구에 실을 감은 뒤 가죽이나 옷감으로 싸매어 이른바 ‘살아있는 야구공’을 만들기도 했고” “공이 너무나 부드럽고 가벼워 제아무리 철완이라도 외야에서 투수에게 직접 연결할 수가 없어” 유격수라는 새로운 포지션을 만들기도 했다.

 원시시대 이래 공은 지상으로 내려온 태양과 별이었다. 그래서 신화다. 사람은 공을 만들었고, 공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저자가 말하듯 공놀이는 인간의 운명, 자연과 우주의 순환을 재현하는 상징이며, 공놀이 경기장에서 삶은 빼앗겼다가 회복된다. 경기장은 운명이 바뀌었다가 다시 뒤바뀌는 곳, 즉 변이의 궁극적인 장소였다.

 초원(草原)과의 대화라는 골프, 중력(重力)을 뛰어넘는 인류의 꿈을 형상화한 스포츠 배구, 무엇보다도 지구 최대의 놀이이자 제전인 축구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있거나 소략한 점이 가슴 아프지만, 어떤 것이든 공과 관련한 추억이 있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너무 재미있어서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고, 끝의 두 장은 아이스크림처럼 핥아 읽었다.

※사족(蛇足) : 공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구기라 불리는 종목들은 어쩌나. 휴대를 간편하게 한 대신 몸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예측불가능성을 극대화한 럭비나 미식축구공, 빙판이라는 전제조건을 감안한 아이스하키의 퍽, 유체공학적 디자인을 통해 플레이어의 에너지를 반감시키는 역설적 고안의 산물인 배드민턴의 셔틀콕. 이것들은 공인가. 공이 아닌가.

장원재 스포츠 평론가

●장원재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런던대 RHUL 비교연극사 박사.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전 SBS 올림픽 해설위원. 저서 『우리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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