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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아이다 보고 오페라 작곡가 된 푸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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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11면

오페라 아이다의 한 장면.

파라오의 총애를 받는 정부 앙크수나문과 그를 사랑한 승정원 이모탭의 부적절한 관계를 눈치챈 파라오. 마침내 그들의 불륜이 발각되자 잔인한 처벌을 두려워한 앙크수나문은 자살하고 악마의 주문으로 그녀를 되살리려 하던 이모탭은 산 채로 석관에 갇혀 영원히 생사체가 된다는 영화 ‘미이라’는 한 여인을 둘러싼 두 남자간의 삼각관계를 그린 이야기 구도다.

적국의 공주이자 잡혀온 노예 신분인 아이다와 그를 사랑하는 장군 라다메스, 그리고 라다메스를 흠모하는 암네리스 이집트 공주간의 삼각관계는 영화 미이라와 달리 한 사내를 둘러싼 두 여인의 삼각관계를 다룬 구도다.

이처럼 어찌 보면 지극히 단순한 삼각관계를 다룬 영화 미이라와 오페라 아이다는 이승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들이 산 채로 매장 당한다는 끔찍한 설정에서 서로 닮았다. 에티오피아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개선하는 이집트군이 데려온 포로들 중에는 아이다의 아버지이자 에티오피아 국왕인 아모나스가 포함돼 있었고 전승에 대한 대가로 이집트 왕에게 라다메스가 요청한 것은 의외로 전쟁포로의 석방이었다.

암네리스 공주와의 결혼을 명 받은 라다메스가 고민 끝에 비밀통로를 통해 아이다와 탈출할 것을 결심하고 그 사실을 엿들은 암네리스 공주에 의해 쫓기게 되고 결국은 붙잡혀 지하무덤에 산 채로 갇히는 형벌에 처해지는데 비밀통로를 통해 이미 도망친 줄로 알고 있었던 아이다가 지하무덤의 어둠 속에서 라다메스를 부르자 둘은 서로 끌어안은 채 죽어간다는 슬픈 이야기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수천 년 전 무덤에서 남녀가 끌어안고 산 채로 묻혀진 것처럼 보인다는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와 그럴싸한 사진자료들이 함께 소개되곤 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다 현상이라고 하겠다. 중세 유럽에서 마녀사냥에 몰려 화형을 당하거나 생매장을 당했던 집시들의 슬픈 역사가 있었고 이른바 ‘분서갱유’를 통해 생매장 당했던 진시황 시대 유생들의 억울한 죽음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에 박해와 순교를 당하던 가톨릭 신자들이 산 채로 서서 땅에 묻혀 죽어가며 “예수, 마리아”를 외쳤다는 충남의 해미 성지 ‘여숫골’에서는 실제로 꼿꼿이 서 있는 유골들이 발견되었다 하니 생매장의 역사는 동서를 떠나 실로 잔인하고 처절한 것이었다.

원래는 교회음악 작곡가가 되려고 했던 푸치니는 1876년 이탈리아의 피사에서 오페라 아이다 공연을 보고 난 후 감동과 흥분에 빠져 며칠 밤을 설친 끝에 마침내 오페라 작곡가로 진로를 바꾸어 나중에 베르디와 쌍벽을 이루는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다. 오페라 아이다는 작곡활동에 지쳐 있었던 만년의 베르디를 다시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동력이었다.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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