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민족주의는 사리의 유물"|EEC확대계기 토인비의 의견|런던 박중희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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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족주의란 과연 인류의 이름으로 지양해야할 하나의 역사적인 유물인가? 유럽 공동시장 확장문제가 부풀어온 유럽 통합의 꿈은 지금 유럽 사람들 간에 갖가지 질문과 화제를 던져주고 잇다. 역사학의 태두 아놀드·토인비 교수는 구공시에 관한 엔카운터 지(6월호) 심포지엄에서 이에 관해 간략하나마 흥미 있는 견해를 펼치고 잇다. 다음은 그 초역이다.
영국뿐만 아이라 서구는 모두가 이를테면 구멍가게 주인들로 된 나라들이다.
그것은 서구 문명의 탐탁잖은 일면이기도 한다. 소위 현대적인 민족주의라는 것을 들어보자. 이것을 처음 만들어낸 것도, 이것을 세계 구석구석에 퍼뜨려온 것도 우리 서구사람들이었다. 지난 5세기동안 서구제국은 제각기 민족적 사리를 돌보고 놀리는 것으로 지새워 왔대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민족주의가 이 지구상에 번져온 과정이란 이것이 빚어낸 질환들이 퍼져온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견뎌야했던 여러 형태의 상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제 민족주의 극복에 앞장서는 일은 서구인이 할 수 있은 하나의 속죄 행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지난 2차대전후 우리들은 민족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흡족찮은 것인가를 깨닫게됐고 시름시름이나마 민족주의를 초월한 입장에서 사물을 느끼고 생각하고 그리고 행동까지 하기 시작했다. 퍽 격려 적인 얼이었다.
그것을 좀더 구체화하는데서 서구인들은 지금 유리한 조건을 갖고있다. 한 지역에 밀집해 잇는 서구제국은 그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전체를 압도할 처지에 있지 않다.
만일 그들에게 충분한 의지만 있다면 지금까지 분할되어온 자신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일이란 위험한일도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서구인들이 세계무대의 상점주 적 지방인 입장에서 벗어나 지금 매우 중요한 단계를 경과하고있는 인류사발전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일 것이다.
미국이나 소련·중국에 비해 유된 하나 하나의 나라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존재다. 물론 나는 유럽 통합이란 그 자체를 보배롭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개의 나라란 가다가 버릴 수도 있다. 통합된 유럽조차도 그 것이 없어지더라도 대단한 일이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는 없어질 수 없다. 통합 유럽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류전체의 복지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다.
유럽 밖의 사람들은 이것이 유럽인으로서의 나의 편견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서구문명은 탐욕과 같은 불미스런 일면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업적도 쌓아왔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만일 유럽이 쇠잔의 그늘에 서서 역사 진전의 방관자로 자처한다면 그것은 유럽 자체는 물론 세계로서도 불행한 일일 것이다. 유럽 공동시장에 애당초 영국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잘못이었다. 잘못엔 대가가 따른다. 실수란 고쳐야하고 대가란 치러야한다. 외면한다고 없어지진 않는다. 우리는 무엇보다 행상인들처럼 구는 버릇에서 벗어나야 한다. 좁은 마음, 짧은 시야란 결국은 좁고, 짧고, 하찮은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 한 민족, 한 지역으로서의 눈앞의 사리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눈앞의 사리를 잊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과 인류로서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기실 역사의 한때를 인간으로 사는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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