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차별>
의학부의 학생생활은 법문학부와 다소 차이가 있었다.
김석환씨(중앙병원원장)의 기억으로는 당시에는 학부만 졸업하면 그대로 의사면허를 주어 요즘과 같은 국가시험제도는 없었다 한다.
진급시험도 1·2·4학년 말에만 있었고 3학년 때는 없었다.
취직이나 진급 걱정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유 분방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한국인 학생들은 『실력으로 일인을 능가하자』는 생각에서 전문분야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축구부는 일인이 1, 2명 끼여있을 정도의 한국인 학생이었으나 나머지 15개 과외활동부는 일인이 태반을 차지했다.
단지 내가 「리드」하던 정구부는 숫자는 적었으나 실력으로 일인을 능가했고 이 전통은 의과 3회의 임영식씨(개업) 4회의 이종호씨(개업) 6회의 홍학진씨(개업), 그리고 문과 9회의 한상봉씨(전 문교부차관) 등으로 이어졌다.
의학부를 졸업한 뒤에는 대부분이 부속병원에 남아있고 간혹 졸업하자 마자 병원을 개업하는 이도 있었다.
부속병원에서 처음엔 부수가 됐다가 2, 3년 지나면 조수가 되어 나라에서 주는 월급을 받게 되는데 한국인은 10년 이상을 조수로 있어도 강사·조교수·교수는 거의 시키지 않았다.
요즘도 의대학생들이 놀기도 잘하며 음악·미술·연극 등 예능 부문에 다양한 재주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당시의 의학부 학생들도 여러 가지 부문에서 기량을 발휘했다.
특히 1회의 박건원씨(트럼본)가 「리드」하는 「밴드」부에서는 김성진(바이얼린) 양철환(플룻) 장경씨(첼러) 등 의과생이 중심이 되어 이혜구(비올라) 최순문(바이얼린) 윤태림씨(바이얼린) 등 우리학생들이 연주회·방송 출연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문과 3회의 이혜구씨는 이때부터 음악적 소질을 발휘해 졸업 후 서울방송국에 취직하더니 결국 현재는 전공분야와 다른 서울음대학장 일을 맡고 있다.
문과 7회 졸업생인 유홍렬씨가 옛과 1학년일 때 당시 2학년이던 현석호·고정옥씨 등이 중심이 되어 일인이 지은 교가를 배척하고 그때 이화여전 교수이던 안기영씨 작곡으로 독자적인 우리말 교가를 만들었다.
『먼동은 새힘으로 닥쳐왔으니 우리의 할 일은 태산같도다. 친구여 나오라 우리의 일터로 상아탑기만을 발길로 차고….』 이러한 학생들이 작사한 우리말 교가를 옛과 뒤에 있던 청량사·봉원사 등지를 돌아다니며 새로 들어오는 후배들에게 가르쳐 민족의 얼을 북돋우기도 했다한다.
법문학부의 법과학생들이 고시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문과학생들은 그 나름대로 전공 학문에 열중했다.
문과학생들은 졸업 후 중학교 교사로는 쉽게 취직되었고 이 밖에 신문이나 방송국·은행 등으로 가는 이도 있었다.
대학 연구실에 남게 되면 부수·조수순으로 승진됐으나 3년 이상은 있기 어려웠고 강사자리를 따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 격이었다.
처음 개교할 때는 없었지만 그후로는 간간이 한국인 교수가 나오기도 했다.
내가 졸업하기 1년 전인 28년3월 경도제대의학부출신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윤일선씨가 한국인으로는 첫 경성제대 옛과 조교수로 취임했다가 1년 뒤에 「세브란스」의전으로 옮겨갔다.
28년12월24일에 조교수발령을 받은 고영순씨(고인)는 이틀만에 사표를 내고 나가 개업했다. 동경제대를 졸업, 30년대 초기에 옛과 독일어 교수로 부임한 윤태동씨도 곧 그만 두었고 경성제대의 대표적인 수재인 유진오씨도 조수를 거쳐 시간 강사로 옛과에서 법학통론강의를 맡아 명강의로 이름났으나 2년만에 보성전문으로 옮겨갔다.
지리의 육지수씨(당시 이름은 육수일·전 서울대신문대학원장·고인), 조선문학의 김태준, 한문의 정만조씨 등이 해방직전까지 시간 강사로 있었으나 지금까지 소개한 것과 같이 한국인은 진급도 제대로 되지 않고 무언중의 차별대우에 불만을 품게 되어 오래 근무하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 상례였다.
한가지 특기할 것은 예과 때 유진오·김성진·이재학·이효석씨 등이 중심이 되어 우리글로 된 동인지 「문우」를 발간했는데 내용에 있어서는 표면적인 항일사상 고취는 피하고 시나 수필 등에서 은연중에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냄새를 풍겼다.
이 잡지는 그후에도 5, 6년간 계속 발간된 것으로 기억된다. <계속> [제자는 필자]계속>한국인의>
(153)제11화 경성제국대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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