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어화부터 후식까지 5단계 풀코스 ‘종합예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5호 10면

1 팔순을 맞은 대왕대비 조씨에게 고종이 선물한 ‘고임상’을 한복려 원장이 재현한 것. 2 15일 만찬엔 조선 왕실에서 그러했듯 궁중음악·무용이 함께 펼쳐졌다. 3 한 원장이 만찬을 준비한 요리사들을 무대로 불러 함께 인사하고 있다. [궁중음식연구원·한국의집]
만경전 야진찬도 제3장면.

다시 1887년의 만경전. 잔치의 주인공 조 대비 앞엔 1자 3치(약 40㎝) 높이로 과일·고기·전·과자 등을 쌓아 올린 그릇 47기의 고임상이 놓여 있다. 금실·은실로 만들어 왕실의 잔칫상을 장식하는 상화(床花)가 화려함의 극치다. 조 대비는 그러나 이 음식에 손을 댈 수 없다. 고임상은 ‘먹는 음식’이 아닌 ‘보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음식의 화려함을 즐기라는 뜻으로 고종이 조 대비에게 올린 선물이다. 고임상에 오른 음식은 잔치 후 양반 댁에 선물로 하사한다. 한 원장은 고임상에 대해 “효심을 담아 부모에게 올린 후 백성과 나눈다는 ‘올림’과 ‘내림’의 철학이 담겼다”고 풀이했다.

126년 전 조선 대왕대비 팔순 잔치, 궁중 야진찬(夜進饌) 재현

조 대비 앞엔 별도의 진찬상(進饌床·궁중잔칫상)이 놓인다. 궁중 악사들이 여민락(與民樂·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는 뜻)을 연주하고 궁중 무원(舞員)들이 춤을 추며 흥을 돋운다. 처음엔 식욕을 돋우는 술과 함께 초미(初味)로 마른안주가 나온다. 문어·한치를 얇게 저며 꽃잎처럼 만든 어화(魚花)가 눈까지 즐겁게 한다. 다음은 두 번째 맛이라는 이미(二味) 상부터 본격으로 요리가 나온다. 서양 코스요리와 진배없다.

만경전 야진찬을 복원해 낸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고종은 이날 야진찬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당시 팔순 잔치가 흔치도 않았거니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조 대비는 고종의 친어머니가 아니었다. 익종의 왕비로 신정왕후로도 불린 조 대비는 처가인 풍양 조씨의 세도가 한풀 꺾인 후 권력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1863년, 그는 화려하게 부활한다. 철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흥선군 이하응과 손잡고 그의 차남 명복을 양자로 삼아 고종으로 등극시킨 것. 조 대비는 즉위 당시 12세였던 고종 뒤에서 10년간 수렴청정을 하며 권력 최고봉에 다시 섰다. 고종과 흥선군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은인으로 극진한 대접을 누렸다. 고종은 조 대비의 거처를 ‘만복이 깃든다’는 만경전(萬慶殿)으로 이름 지었고, 팔순 연회 역시 사흘간 아침·밤 두 번씩 6회의 잔치로 펼쳤다. 특히 밤의 연회인 야진찬은 잔치의 백미였다. 왕실의 부엌인 소주방은 밤낮없이 분주했고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졌다. 그리고 이 야진찬의 준비·진행 과정을 『진찬의궤(進饌儀軌)』로 소상히 기록했다.

『진찬의궤』는 한 원장이 지난 15일 저녁 행사를 준비하는 데 최고의 지침서가 됐다. 조선의 마지막 상궁이었던 고(故) 한희순 상궁부터 어머니 고(故) 황혜성 교수에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궁중음식의 기능보유자가 된 한 원장에게도 만경전 야진찬은 특별하다. 어머니 황 교수의 팔순 잔치 선물을 고민하다 만경전 야진찬 음식을 재현해 상을 차려드린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15일 ‘한국의 집’에서 치러진 행사는 그가 50여 명의 손님들에게 만경전 야진찬 음식을 선보이는 첫 자리였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사장 김종진) 측에서 준비한 궁중음악·무용과 함께 한 원장의 진찬상을 즐기는 이날 만찬은 1인당 25만원에 달했다.

한치 등을 꽃모양으로 다듬은 어화(魚花)와 깨송이부각, 잎새약포 모둠.

한치로 만든 꽃, 석류 만두, 떠먹는 막걸리
한 원장은 이날 행사를 위해 꼬박 한 달을 매달렸다. 왕실 기록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에 맞는 기술과 맛을 보탰다. 다섯 개의 북을 치며 춤사위를 선보이는 화려한 오고무(五鼓舞)의 무대를 앞에 두고 처음 나온 첫 번째 코스는 마른안주 모둠. 흰색 백자 접시 위에 덮인 꽃그림 한지를 들어내자 어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 대비가 즐긴 그대로, 문어·오징어를 손질해 꽃잎 모양으로, 한치를 잘라 꽃부리 모양으로 솜씨를 부렸다. 흰색 넓은 자기 접시 위엔 소고기를 곱게 갈아 양념한 후 꽃에 살짝 묻혀 말린 잎새약포, 들깨가 열린 가지에 얇은 찹쌀풀을 입혀 튀겨낸 깨송이부각이 한 폭의 그림처럼 놓였다. 여기저기에서 “이거 먹는 거 맞아요? 너무 예쁜데”라는 탄성이 나왔다.

감탄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접시가 치워지자 한복 차림의 남녀가 상 위에 놓인 백자 그릇의 뚜껑을 열고 두 번째 코스, 버섯잡채와 홍시죽순채를 각자 그릇에 나누어 담아줬다. 뚜껑을 덮어놓아 첫 번째 코스를 즐기는 동안 궁금증을 자아내는 효과까지 노렸다. 얇게 저민 죽순, 데친 미나리 등이 달콤한 홍시 소스에 어우러졌다. 어느 하나가 도드라지는 공격적인 맛이 아니라 궁중음식답게 담백하고 기품 있는 조화를 만들어냈다. 솔향 그윽한 송절주(松節酒)도 흥을 돋웠다. 무대 위엔 어느새 여민락 선율이 퍼지고 있다. 코스가 끝날 때마다 한 원장이 무대에서 전하는 각 요리에 대한 설명도 의미를 더했다. 한 원장은 “그릇과 요리, 술과의 조화도 중요하다”며 “종합예술로서 한식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갈비찜. 아삭한 배생채가 함께 나왔다.

다음은 삼미(三味), 찜과 생채의 순서다. 검은색 자기에 소복이 담긴 갈비찜과 함께 흰 자기엔 배생채가 담겼다. 갈비찜엔 잘게 칼집을 낸 전복과 둥글게 깎은 무·밤이 어울렸다. 왕실 어른들이 씹기 좋도록 배려한 마음이 21세기 상차림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기에 배생채는 야채를 곁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원장이 더한 아이디어다. 도톰한 굵기로 채썬 배·사과·감에 생율을 얇게 저며 올려 아삭함을 더했다. 식초를 기본으로 낸 단촛물을 소스 삼아 입안을 개운하게 정리해줬다.

“한식, 영화·음악 이어 한류 3.0 시대 열 것”
이 정도까지만 해도 배는 부를 터. 그러나 만경전 야진찬의 풍성함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사미(四味)로 우리가 흔히 신선로라고 부르는 열구자탕(悅口子湯)과 함께 경사스러운 날에 먹는 국수가 나왔다. 열구자탕은 이름 그대로 ‘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이지만 색색의 고명은 눈에도 호사였다. 성인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꿩고기 완자에 소의 위인 처녑으로 부쳐낸 전에, 석류 모양으로 얌전히 빚어낸 만두 등속이 담겼다. 옆엔 배춧잎으로 싼 생전복·낙지 양념무침이 칼칼함을 더했다.

‘입을 즐겁게 한다’는 열구자탕(悅口子湯).

한 원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배가 너무 부르실까 걱정도 했지만 맛이 있으면 다 드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성껏 준비했다”는 말에 손님들은 깨끗이 비워낸 접시를 보며 웃었다. 이제 후식 차례. 한식이 후식에 약하다는 지적을 의식해선지 한 원장이 각별히 공을 들인 분야다. 아담한 흰색 백자 접시 위에 빨간 단풍잎을 깔고 찐 밤을 으깨 다시 밤껍질에 담고 계피가루를 살짝 묻혀 풍미를 더한 율란(栗卵), 찐 대추를 다져 다시 대추 모양으로 빚은 조란(棗卵), 찐 생강으로 만들고 다진 잣가루를 묻힌 생란(生卵)을 사이 좋게 하나씩 올렸다. 음료로는 배에 통 후추를 박아 생강 넣은 물에 끓여낸 배숙 수정과가 나왔다. 또 하나, 참석자들을 놀라게 한 건 함께 나온 막걸리였다. 잔 옆엔 작은 목제 숟가락이 하나씩 놓였다. 국순당에서 내놓은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다. 요구르트와 흡사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한국식 디저트 와인으로 딱이었다.

요리가 끝난 후 한 원장은 일군의 요리사를 주방에서 무대 위로 불러냈다. 그들을 옛 궁중에서처럼 ‘숙수(熟手)’라고 부른 한 원장은 이들을 “숨은 주인공”이라며 박수를 청했다. 서양 유명 레스토랑에서 스타 셰프들이 음식이 나온 후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러 나오는 것과 비슷하게 예를 갖춘 것이다. 이날 만찬에 함께한 김동호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과 변영섭 문화재청장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왕이 된 느낌을 주는 훌륭한 연회”라며 “우리 드라마·영화가 한류 1.0시대를, 가요가 한류 2.0시대를 열었다면 이제 한식이 한류 3.0시대를 가져올 것이다. 주한 외국인 대사 등과도 오늘의 야진찬을 나누고 싶다”고 소감을 말했다.
한 원장은 행사 후 “고임상과 같은 예술적 기술을 가진 숙수들이 이제 거의 남아 있지 않다”며 “해외 유명 셰프들을 좇아 유학을 가는 젊은 요리사들의 풍토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문화융성을 위해서는 프랑스의 르 코르동 블루, 미국의 CIA와 같은 정식 요리 전문 학교를 만들어 정통 한식을 정예 교육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