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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한국인 첫 미국 PS 승리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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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국내 프로야구 한화 시절 류현진(26·LA 다저스)의 공을 7년 동안 받았던 포수 신경현(38·SPOTV 해설위원)은 경기 전 TV를 통해 후배가 몸을 푸는 걸 봤다.

 “몸이 가벼워 보이는데? 표정도 좋아 보이고. 그렇지, 저게 류현진이지. 오늘은 잘 던질 거야. 분명.”

 류현진은 15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세인트루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3차전에서 선발 등판해 7이닝 3안타·1볼넷·무실점했다. NLCS 2연패에 빠져 있던 다저스는 시리즈 첫 승을 거뒀고, 류현진은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로 포스트시즌 승리투수가 됐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류현진의 날(Ryu the day)’이라는 제목으로 메인 화면을 장식했다. LA타임스는 ‘류현진은 일생일대의 호투를 펼쳤다’며 치켜세웠다.

고교 때 팔꿈치 수술 … 평소 불펜투구 생략

 신 위원은 “현진이가 1회부터 빠른 공을 던지더라. 최고 시속 95마일(153㎞)의 강속구가 들어가는 걸 보고 오히려 걱정이 됐다. 힘을 믿다가 오버페이스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내 야구인생에서 1회부터 그렇게 전력 피칭한 건 처음”이라고 말할 만큼 올 시즌 들어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 한 점도 주지 않는 집중력을 보였다.

 “우리가 2패로 몰려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초구부터 전력 피칭을 했다. 너무 긴장해선 안 되지만 큰 경기에선 적당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플레이오프의 뜨거운 분위기가 피칭에 영향을 미쳤는가.

 “많은 도움이 됐다. 중요한 경기일수록 초반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다음 등판에서도 초반에 특히 조심하겠다. 경기 전 몸을 풀 때부터 공에 힘이 있었다.”

 -경기 전날 돈 매팅리 감독이 ‘피칭 내용이 좋지 않으면 조기에 강판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감독님 말씀대로 난 강속구 투수가 아니다. 감독님이 어떤 말씀을 하든지 의식하지 않은 채 내 공을 던졌다.”

 류현진은 영리했다. 신 위원은 “공에 힘이 있었지만 현진이는 직구에 의존하지 않았다. 절반(투구수 108개 중 52개)만 빠른 공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서클 체인지업(29개), 슬라이더(14개), 커브(13개) 등의 변화구를 효과적으로 안배했다, 그래서 빠른 공이 더 위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신 위원은 “네 가지 구종을 던지면 타자 입장에선 노리는 공을 때릴 확률이 25%밖에 되지 않는다. 류현진은 경기 내내 그걸 잘 이용했다”고 덧붙였다. 류현진은 미국 포스트시즌 첫 등판이었던 지난 7일 애틀랜타와의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3이닝 동안 6안타·4실점했다. 신 위원은 “2006년 신인 때부터 현진이와 호흡을 맞췄지만 그렇게 긴장한 건 처음 봤다. 상체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컨트롤이 흔들렸다”면서 “메이저리그 신인이 포스트시즌 첫 등판에서 긴장한 건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현진이니까 어떻게든 이겨낼 것으로 믿었다. 그는 절대 연패를 당하지 않는 투수다. 오늘의 류현진이 진짜 류현진”이라고 말했다.

어제는 경기 직전 30개 이상 전력투구 연습

 평소 불펜피칭(선발 등판 이틀 전에 하는 피칭)을 하지 않는 류현진은 14일 롱토스(멀리 던지기) 40개 이상을 했고, 15일 경기 직전 포수 A J 앨리스를 앉혀놓고 30개 이상의 전력 피칭까지 했다.

동산고 시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던 류현진은 경기 전에 많이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다. 2006년 신인 때를 제외하곤 국내에서도 불펜피칭을 생략했다. 김인식(66) 당시 한화 감독은 류현진의 특수성을 이해해 훈련 스케줄을 따로 배려했다. 류현진은 워낙 좋은 투구폼과 제구를 갖고 있기에 많은 훈련피칭이 필요 없었다. 꼴찌 팀의 에이스였던 류현진으로선 실전에서 더 많이 던지는 게 중요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뒤에도 류현진은 불펜피칭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NLCS 3차전 등판에서 류현진은 1회부터 온 힘을 다 쏟아내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신 위원은 “한화 시절 현진이는 120개 이상 던진 날이 많았다. 워낙 노련하게 완급 조절을 잘했기 때문에 힘 빼고 던진 공이 많았다”며 “그러나 빅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특히 오늘처럼 중요한 경기에서는 처음부터 전력 피칭을 해야 했다. 현진이가 영리한 선수답게 컨디션 조절을 잘했다”고 칭찬했다.

한화 때 단짝 신경현 “연패 거의 없는 투수”

 류현진은 평소와 달리 경기 내내 비장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2-0이던 7회 초 투구수 100개를 넘기자 매팅리 감독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류현진은 “더 던질 수 있다”고 말한 뒤 마지막 타자 맷 애덤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힘은 다소 빠져 있었지만 혼을 담아 던진 공이었다. 91마일(146㎞)짜리 직구에 맷 애덤스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류현진이지만 혼신의 일구(一球)를 던진 뒤 야수처럼 포효하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절대로 두 번은 지지 않는 괴물다운 모습이었다.

김식 기자

사진설명

LA 다저스 류현진이 15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와의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NLCS) 3차전에 선발 등판해 1회 초부터 전력 투구하고 있다. 평소와 달리 이를 악물고 던진 류현진은 1회부터 최고 시속 95마일(153㎞)의 강속구를 던졌다. [로스앤젤레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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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이렇습니다

◆ 위 기사 중 오역이 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걸린 기사 제목 중 ‘Ryu the day’라는 부분만 발췌해 ‘류현진의 날’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영어 원문은 ‘Dodgers blank Cards, make’em Ryu the day’였습니다. ‘다저스가 카디널스를 영패시켜 그들을 낙담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뼈저리게 후회하다’라는 뜻의 숙어 ‘rue the day’와 류현진의 성(姓)을 묶어서 만든 펀(pun·동음이의어 등을 활용한 말장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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