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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속의 천연기념물|황새 죽음을 계기로 본 그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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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4면

세계적인 보호조이며 천연기념물 199호로 지정돼 있는 황새 1쌍이 충북 음성의 두메 마을에 홀연 나타났다는 소식은 큰 기쁨으로 전해졌는데 이어 그 한마리가 사냥꾼의 총에 맞아 죽은 비보는 관계 학계는 물론 온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관리국은 문화재로 지정된 동·식물 및 화석 등에 대하여 전체 점검을 실시하고 있으며, 학계는 또 절멸 위기의 천연 자원의 보호 대책을 새삼 제기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지정 천연기념물은 2백32건. 그중 식물로서 목본류가 1백8건으로 가장 많고 초본류는 한난·일엽 고사리 등 불과 3건밖에 안 된다. 동물로는 조류가 29건, 수류 3건, 어류 4건, 곤충 2건이다. 암석류로는 화석 5건, 동굴 6건이며 한라산 천연보호 구역, 울릉도 원시림, 밀양 얼음골 등과 같이 산천 일대를 보호구로 설정한 경우도 5건이 있다.
이 같이 행정적으로 보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 가운데 은행 나무는 수령 5백년 이상의 노목이 전국적으로 13그루나 지정돼 있고, 백송이 8그루, 향나무류가 7그루나 된다. 그러나 초본류는 한지역 밖에 없는 희귀한 것들이며 특히 동물에 있어서는 14종이 도래지 및 서식처를 확인치 못하여 그들 이름만을 지정한 예까지 있다. 크낙새·따오기·황새·먹황새·백조·두루미·재두루미·팔색조·저어새·느시·흑비둘기 및 장수하늘소·산양·사향노루가 그러하다.
이번 낚시회 회원의 황새 사냥처럼 조류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은 총기류다. 엽수 협회에 등록된 전국의 엽총은 3만여 점인데 그밖에 무허가로 소지한 것이 2만 정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류학자인 경희대 교수 원병오 박사는 요즘이 알까는 시기임을 강조하며 그렇게 무식한「스포츠맨」(헌터) 이라면 총을 준다는 게 두렵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무허가로 총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대개 특권 계급에 속하기 때문에 법도 경찰도 도리어 어름어름 회피하는 지경』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사건이야말로 온 국민의 세계적 망신이라고 지탄한다. 즉 황새는 국제적으로 보호하는 「베스트 25」종 익조의 하나인 것이다.
학·두루미·황새 등은 비교적 영리한 새라서 조금만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다시 오지 않는다. 전국에 이러한 조류의 도래지는 여러 군데 알려져 있지만 이제 찾아볼 수 없는 곳이 적지 앉다.
근래에는 또 농약에 의하여 먹이를 구할 수 없어서 자취를 감췄다고 해석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야조가 깃들일만한 환경의 조성과 먹이의 공급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관계 학자들은 문화재 관리 당국에 건의한다.
광릉의 장수하늘소는 우리 나라 밖에 없는 독특한 곤충이다. 그런데 이 귀중한 학술 자료는 일본에서 오히려 얻기 쉬운 실정. 즉 돈을 벌고 혹은 일본에 유학할 길을 트기 위해 막대한 「국보 밀수출」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광릉에서도 보기 어렵게 됐다.
한강 상류의 열목어와 하류의 황소가리는 「멸종 위기」란 소리가 수년 전부터 드높음에도 고기 잡는 사람들에겐 아랑곳없다.
제주의 대만이 서식하는 천지연에는 아예 뱀장어를 양식하겠다고 신청한 일도 있다. 문화재 위원 최기철 박사는 『문화재로 지정하면 무슨 약이 된다는 소문이 퍼져 더욱 잡아내는 형편』이라고 말한다. 충무의 팔손이나무, 내장산 굴거리나무 등도 역시 그런 시련을 겪고 있다.
식물학자인 고대 교수 박만규 박사는 제주도에 있어서 자생종인 일엽 고사리·한난·문주란이 이제 제자리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섭섬의 일엽 고사리는 완전히 멸종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것이 모두 제주도의 각 가정에 옮겨졌거나 서울로 반출됐다는 것이다.
한난이나 문주란도 마찬가지. 지정됐기 때문에 더욱 귀한 선물용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몇명의 감시인만으로 지켜질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지방민 자체가 민간 운동을 벌여야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지방 행정 당국은 수요자를 위해서라면 별도의 재배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의한다. <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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