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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삶 포기' 하려는 이들, 외면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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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대규 메디키퍼 대표가 ‘스마일 캠페인’에 사용하는 팻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최승식 기자]

42.6명. 한국에서 하루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숫자다. 33분마다 1명씩 스스로 목숨을 끓는다. 8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 40~50대에선 암에 이어 2위다. 60~70대는 자살자 수에서 다른 연령대를 압도한다.

 “자살률이 높다고 걱정하면서도 막상 자살 징후가 있는 이들을 피합니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죠. 자살한 사람을 미화하는 일도 적지 않죠.”

 최대규(26) ‘메디키퍼’ 대표는 “‘힘든 일 있느냐’고 둘러서 물어보지 말고, ‘자살을 생각하니’ ‘죽고 싶은 생각이 드니’라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라”고 했다. 자살을 생각 안 한 사람이라면 그런 질문을 어이없어 하겠지만, 실제로 자살을 고민하던 사람이라면 반가워하며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마련이라고 한다.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상황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섣불리 판단하거나 충고하려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 들어주세요. 그리고 전문적인 상담기관에 연계해 주세요.”

 경희대의학전문대학원 2학년인 최 대표는 지난해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산하에 자살예방단체 ‘메디키퍼’를 창립했다. ‘메디키퍼’는 ‘메디컬 게이트키퍼’의 줄인 말로 자살 징후를 보이는 이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고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연계하는 사람을 말한다. 최 대표는 “의사가 가장 효과적인 메디키퍼일 수 있겠다 싶어 단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처음부터 정신과에 가지는 않거든요. 피곤하다거나 머리·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동네 병원을 찾는 일이 많습니다. 실제로 자살자의 90% 이상이 1년 이내에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합니다. 이런 이들을 가장 먼저 관찰하고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의사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최 대표가 의대협 홈페이지에 메디키퍼 창립에 관한 메시지를 올렸을 때 24명이 함께하겠다고 답했다. ‘과외하는 학생이 자살을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줘야할지 몰라서’ ‘나 스스로 한때 자살을 고민해본 적이 있어서’ 등의 이유로 모인 이들이었다. 한 달에 1~2회씩 중고등학교나 각종 봉사단체와 대학 축제 현장 등을 찾아 메디컬키퍼 소양 교육과 자살 예방 교육을 펼쳤다. 거리에서 ‘스마일 캠페인’도 벌였다. ‘눈이 마주치면 웃어 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눈 맞추고 웃어주고 함께 사진 찍는 이벤트였다. 그 사이 메디키퍼 회원은 200여 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많은 호응이 있을 거라곤 예상 못했습니다. 자살에 관심이 높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를 위해 뜻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의대생들이 많은 것도 그 이유라고 생각해요.”

 최 대표 본인은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항상 웃는 인상이라 고등학교 땐 ‘선생님께 혼나면서도 웃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학기, 메디키퍼 활동으로 바빠 유급을 해 난생처음 좌절감에 빠져 전문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가 제일 신나서 하는 일은 남들이 안 하는 일, 재미있는 일, 그리고 돕는 일이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분리수거 당번을 하면서 분리수거장을 우리 아지트로 삼았죠. 깨끗하게 청소하고, 효율적으로 분리하고, 칸막이를 새로 만들어 배치했는데, 해 지는 줄도 모르고 분리수거를 하곤 했어요. 그렇게 재미있더라고요.” 연세대 화학과 재학시절엔 주 3회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주제로 사진전도 열어줬다.

 “몸이 아픈 이들을 위한 지원은 상당히 갖춰졌지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지원은 많이 부족합니다. 마음이 아픈 이들이 자살에 이르지 않을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다각적인 사회적 지원책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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