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횟집·활어센터도, 노래방·어부도 … '오염수 고통' 도미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일요일인 13일 오후 인천 연안부두 인근 회센터가 텅 비어 있다.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고객이 끊기다시피 했다(왼쪽). 부산 민락동 선착장은 어선들로 가득 찼다. 대부분 고기잡이를 포기한 어선들이다. >>동영상은 joongang.co.kr [인천=안성식 기자, 부산=송봉근 기자]

금요일인 지난 11일 오후 7시30분 인천시 항동 연안부두 횟집거리 일대. 얼마 전 같으면 주말 휴일을 앞두고 서울과 수도권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북적거릴 시간이건만 수십 곳 늘어선 횟집들은 텅 비어 있었다. 절반은 손님이 아예 없었고, 나머지도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몇 안 되는 손님조차 금세 자리를 떴다. 한 횟집에서 일행 3명과 모둠회 한 접시를 먹은 뒤 30여 분 만에 일어난 김홍규(60)씨는 “손님이 우리 팀밖에 없다 보니 분위기가 썰렁해 회를 즐기며 얘기를 나눌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10시가 되자 대부분의 횟집이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금·토요일이면 밤 12시 넘어서까지 영업을 하던 얼마 전과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서 광주회집을 운영하는 정경숙(57·여)씨는 “오늘 하루 종일 세 팀밖에 못 받았다”며 “매상이 예전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장사가 안 돼 종업원을 내보내고 가족들끼리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밀레니엄 회센터. 횟감을 파는 가게 30여 곳이 모인 이곳 역시 손님들은 거의 없었다. 주인 없는 가게도 눈에 띄었다. 손님이 오지 않아 주인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함양상회를 운영하는 김갑자(59·여)씨는 “어제는 전어 1㎏을 판 게 전부고, 오늘도 한두 손님밖에 없었다”며 “오늘 이 시간까지 마수걸이를 못한 집이 상당수”라고 전했다.

 근처 민락동 수협위판장 부둣가에서는 활어 도매상 천근수(63)씨가 점원 한 명과 함께 대형 수조에서 뜰채로 연신 죽은 물고기를 건져냈다. 그는 “횟집들이 장사가 안 된다며 사 가지 않아 보관만 하다가 생선을 죽여 내보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종업원들 일자리 잃고, 식자재상 타격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의 오염수 유출소식에서 비롯된 수산물 오염 우려 여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달 초 방사능이 기준치의 2만 배를 넘는 오염수가 유출됐다고 일본 도쿄전력이 발표하는 등 소비자를 불안케 하는 소식이 끊이지 않아서다. 횟집은 손님 얼굴을 보기 어렵게 됐다. 그러면서 횟감을 공급하는 도매상이 타격을 받았고, 어민들은 일손을 놨다. 횟집에 곁들이 찬거리를 공급하는 식자재상 역시 전전긍긍이다.

 견디다 못한 횟집들은 인력을 줄이고 있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인근 횟집거리 주인들은 “상당수 점포가 4~5명이던 직원을 1~2명만 남겼다”고 말했다. 인천 연안부두의 한 노래방 주인은 “횟집이 텅 비자 노래방 손님도 예년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며 “이 지역 주점들도 똑같은 상황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불꽃축제 특수마저 사라질까 우려

 부산 광안리해수욕장 일대 상인들은 수산물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부산불꽃축제’(10월 25~26일) 특수마저 사라질까 걱정하고 있다. 매년 10월 말 광안대교 일대에서 열리는 불꽃축제는 이 지역 매상을 가장 많이 올려 주는 행사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이철욱 민락회촌상가번영회장은 “예년에는 9월이면 우리 가게처럼 광안대교가 보이는 횟집은 예약이 끝났다”며 “그러나 올해는 대부분의 횟집이 한두 건 예약에 그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수산물 방사능 오염 우려 때문에 지역 경제가 흔들릴 지경”이라며 탄식했다.

 소비가 줄어 생선값은 뚝 떨어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품 1㎏에 4350원이던 고등어 전국 평균 도매가는 최근 2880원으로 34% 하락했다. 같은 기간 오징어는 31%, 갈치는 20% 값이 떨어졌다. 수산물 값이 폭락하면서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잡아다 팔아 봐야 배 기름값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13일 부산 민락동 선착장은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은 어선들로 가득했다. 김수환(68) 민락어촌계장은 “잡아 와도 안 팔려 200여 척의 어선이 거의 조업을 포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횟집과 수산업 종사자들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국산은 안전하다’며 메뉴에 횟감 원산지 표기를 해 놓아도 가게에 와서 메뉴를 들춰 보는 고객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연안에서 잡히는 물고기는 방사능 오염 우려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우선 후쿠시마 바닷물은 한반도 근해로 오지 않고 대부분 하와이 쪽으로 흘러간다. 또 부경대 장영수 수산과학대학장은 “국내 물고기들은 일본으로 가지 않고, 일본 물고기도 한국에 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수산물 방사능 검사에서 아직 기준치 이상 방사능이 나온 적도 없다.

 그래도 소비자 불안은 여전하다. 이로 인해 어부에서 횟집, 주변 상권에 이르기까지 모두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지난달 노량진수산시장과 서울역 등지에서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는 행사를 했으나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해수부 관계자는 “수산물 외면은 순전히 소비자들 판단에 의한 것”이라며 “방사능 검사를 철저히 하고 과학적으로 우리 수산물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것 말고는 정부가 취할 수단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범정부 차원 수산물 안전성 홍보 필요

 수산업 종사자들은 “대책을 마련하려는 정부 의지가 약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수산물 도매업체인 인천 막내수산 이승부(61) 대표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 수산물 공급·유통사업자들이 무너질 수 있다”며 “이들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사업자금을 긴급 지원하고, 한편으로 해수부가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수산물 안전성 알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천=전익진, 부산=위성욱, 세종=최선욱 기자
사진=안성식, 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