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사기꾼으로 드러난 중국 '거지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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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륙에서 부러움 섞인 시선을 모았던 중년 거지의 사기 행각이 드러났다.문제의 인물은 48세인 뤄푸위앤(羅福元).그는 쓰촨(四川)지역에서 거지 행각으로 100만위안(元.약 1억2000만원)을 넘게 모았다고 큰소리쳤다. 웬만한 직장인의 월급이 1000~2000위안인 중국에선 큰 돈이다.

그를 뉴스의 인물로 만든 것은 26살 연하인 러산(樂山)대학의 여대생 예린(葉琳)과 1년여간의 동거 생활 끝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떠벌리면서다.또 "아들을 명문 사립고교에 보내지만 비싼 학비를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예린이 오는 10월 싱가포르로 유학을 가면 피를 팔아서라도 학업을 돕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도 "1992년 이전에 네 개의 공장에서 공장장을 했지만 윗사람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쫓겨났다"고 말했다."그래서 호구(戶口.주민등록)가 말소됐고,사람들에게 맞아 오른쪽 귀는 멀고 오른쪽 눈은 실명했다"는 것이다.

쓰촨 지역의 언론 매체들은 그를 '명물 거지''거지왕'으로 대서 특필했다.이를 인용해 베이징(北京)의 주요 매체들도 앞다퉈 화제 기사로 다뤘다.

하지만 그의 말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홍콩의 문회보(文匯報)는 31일 예린을 직접 인터뷰한 추적 기사를 실었다.가짜 거지왕도 함께 앉혀 놓고서다.

이 자리에서 예린은 "뤄푸위앤을 잘 알지 못하고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폭로했다."동정심에서 그를 도왔는 데 이렇게 난처하게 만들 줄 몰랐다"며 눈물을 뿌렸다.

뤄는 지난 27일 안면이 있던 예린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호구.신분증이 없어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데 내가 합법적인 공민(公民)이란 걸 증명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하지만 뤄는 두 사람의 약속 장소에 기자를 불러 그녀를 '신부'로 소개했다.

뤄는 기자 앞에서 전날 두 사람이 뤄산(樂山)의 결혼 등기소에 함께 갔던 것처럼 얘기를 꾸며냈다.예린은 침묵으로 동조했다.그녀는 "신분증을 빨리 얻는 데 도움이 되나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그러면서 "결혼 등기를 했다는 26일에 나는 청두(成都)에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댔다."1년여간 동거했다는 말은 나를 더럽히는 말"이라고 분노했다.

가짜 거지왕의 사기 행각은 계속 이어진다.문회보는 "그의 고향에 있는 호구(戶口.주민등록)는 그대로 살아있다"고 밝혔다.네 개의 공장에서 일했다는 것 역시 멋대로 각색한 얘기다.

뤄위앤푸는 거지가 아니라 '투서꾼'에 가깝다는 게 문회보의 결론이다.그는 1980년대 말부터 돈을 뜯어낼 만한 기업.개인과 지방 공무원을 상대로 투서.진정을 일삼아왔다는 것이다.이 신문은 "뤄가 유명세를 타기 위해 이번 사건을 조작했다"고 말했다.

가짜가 판 치는 중국 사회에서도 이번 사건은 어처구니 없는 모양이다.'거지가 여대생과 결혼한다'며 선정적인 보도를 했던 언론 매체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뉴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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