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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살아있는 셰익스피어 작품이 내 영감의 원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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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09면

존 노이마이어가 현대음악 작곡가 레라 아우어바흐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안무한 ‘Preludes CV’. ©Holger Badekow
존 노이마이어 1942년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 출생. 스웨덴 코펜하겐을 거쳐 영국 런던 로열발레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춤을 공부하며 두 개의 다른 학사 학위(영문학·극장예술)도 취득했다. 63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69년부터 4년간 프랑크푸르트 발레단 단장을 역임했다. 이때 자신만의 스타일로 선보인 ‘호두까기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다프니와 클로에’로 세계 발레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73년 함부르크발레단 초대 단장 겸 상임안무가로 취임한 그는 6년 후 함부르크 발레학교를 설립해 후진 양성에도 힘써 왔다. 함부르크 발레단은 그의 지휘 아래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메이저 발레단 중 하나로 성장했다.

독일 함부르크 발레단이 올해로 창단 40년을 맞았다. 1973년 초대 단장 겸 상임 안무가로 취임해 지금까지 장장 40년간 이 발레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은 미국 태생의 존 노이마이어(John Neumeier·71). 그는 단순한 발레단 단장이 아니다. 전 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스타일을 선보이는 천재 안무가로 더 유명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프랑스 파리국립오페라단, 영국 로열발레단, 미국 뉴욕시티발레단,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스웨덴 왕립발레단,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등 수많은 발레단을 순회하며 창작 작품 ‘카멜리아 레이디’와 ‘니진스키’, 원전을 새롭게 해석한 ‘실비아’‘백조의 호수’‘한여름밤의 꿈’ 등 120편이 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려 왔다.

천재 안무가, 함부르크발레단 존 노이마이어를 만나다

그는 발레의 전통 미학과 현대 예술의 극적 요소를 환상적으로 결합하기로 유명하다. 추상적인 미(美)로서의 발레가 아닌 성경·호머·셰익스피어·뒤마 등의 텍스트에서 끌어낸 이야기적 요소를 도드라지게 풀어낸다. 정통 발레의 기교와 오페라하우스적 감성이 독일 표현주의와 어우러지면서 탄생시킨 ‘노이마이어식 발레’다. 추상성보다 극적 발레를, 파격적이거나 난해함보다는 정제된 절제의 미학을, 고전을 불러내되 원전을 왜곡하지 않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현대 발레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해 오고 있다.

3년 만에 성사된 인터뷰를 위해 9월 23일 오전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한국에 가보질 못했다. 한국에 꼭 가고 싶다. 초청해 주신다면 우리 발레단도 기뻐할 것”이라며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려 주었다.

노이마이어의 ‘카멜리아 레이디’. ©Holger Badekow
연습 중인 노이마이어. ©Holger Badekow

-함부르크로 오는 길에 잠깐 파리에 들러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올 시즌 오프닝 작품으로 올린 당신의 ‘카멜리아 레이디’를 보았다. 뭔가 새로워진 느낌이다.
“카멜리아 레이디’ 같은 유명한 작품은 무용수들이 바뀔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무용수의 개인적인 캐릭터가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발레리나와 작업을 할 때는 그 무용수를 다른 인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무용수의 특징과 장점을 뽑아내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은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의해 한국에도 소개됐다.
“강수진의 집중력은 정말 대단하다. 내면이 잔잔하고 고요하다. 이런 점은 공연을 할 때 아주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능력은 드라마의 절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강수진의 가장 큰 강점은 작품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해 낸다는 것이다. 처음 작품을 시작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작품 해석에 대한 열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단장으로서 40년 동안 함부르크 발레단에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큰 기여라면 아마도 발레단 그 자체이지 않을까. 발레단은 작품을 운반하는 하나의 배와도 같다. 안무는 책이나 영화가 아니라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살아난다. 함부르크 발레단의 40년을 작품으로 돌아보면 정말 대단하다. 우리 발레단은 1년에 90회의 공연을 올리고 23개의 다른 발레 작품을, 그것도 대부분 전막 공연을 했다. 웬만해서는 이룰 수 없는 성과다. 엄청난 창의적인 정신력과 예술가로서의 사명감, 작품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무용수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발레단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온 것 자체가 나의 가장 큰 성취이자 기여라고 생각한다.”

‘니진스키’. ©Holger Badekow

-2000년 7월 함부르크에서 바츨라프 니진스키 타계 50주년을 기념해 당신이 그에게 헌정한 초연작 ‘니진스키’와 니진스키의 대표작 및 재해석한 작품을 모은 ‘니진스키 갈라’를 감동적으로 보았다. 니진스키는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그는 내가 예술적으로, 인간적으로 칭송하는 인물이다. 11세 때 그의 책을 읽은 후 줄곧 니진스키의 작품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2000년, 나는 니진스키의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1950년 1월 스위스에서 마지막으로 춤을 췄는데 당시 그는 정신병에 걸려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유럽은 혼란스러웠다. 니진스키의 내면세계와 그를 둘러싼 외부세계를 작품에 담으면서 나만의 시각으로 야만의 시대를 겪은 인간의 반응과 감정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특히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과 재앙을 남긴 1차 대전도 담아내려고 했다.”

-‘니진스키 갈라’는 어떻게 시작했나.
“그를 잃어버리거나 잊지 않기 위해 기획했다. 75년 첫 번째 갈라 쇼는 니진스키가 춤추었던 레퍼토리 모음이었다. 제롬 로빈슨(뉴욕시티발레단 안무가)이 새롭게 해석한 니진스키의 ‘목신의 오후’와 당시 프레데릭 애쉬튼(영국 로열발레단 안무가)이 재안무한 이사도라 던컨의 ‘브람스의 왈츠’도 포함됐다. 그 후 매년 갈라 쇼를 위한 특정 테마를 선정하고 있다. 물론 니진스키의 무용 철학과 관련된 것 중에서 고른다.”

-당신에게 니진스키는 무엇인가.
“나는 지금도 니진스키의 새로운 면을 늘 발견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니진스키가 단지 훌륭한 무용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 관한 글들을 계속 읽으며 그가 얼마나 천재적인 안무가인지 알게 됐다. 그는 작품마다 새로운 스타일을 구축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동작들이었다. 그의 일기를 보면 그가 철학가이자 인간적 사고의 주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2006년 세운 ‘존 노이마이어 재단’에는 니진스키에 관한 그림·조각·사진 등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돼 있다(노이마이어의 대저택은 방대한 컬렉션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피카소·스트라빈스키·코코 샤넬·장 콕도·로댕·드뷔시·레온 박스트 등 니진스키 및 그와 친분이 있던 예술가의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 왔다. 니진스키와 동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이 니진스키를 모델로 한 엄청난 양의 그림·조각·시·편지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안무가 이전에 니진스키 연구자이자 전시 기획자처럼 보였다).”

노이마이어와 함께 한 장선희 교수.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자랐고 지금은 독일에서 살고 있다. ‘뿌리’에 대한 생각은 없는지 궁금하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용이다. 그래서 그런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항상 내가 예술 활동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곳에 있겠다고 말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프랑크푸르트는 정말 아름다운 도시인데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있을 때도 일하느라 도시를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다. 함부르크 또한 더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여기가 함부르크여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스튜디오, 작품들, 무용수들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여기 있는 것이다.”

-다른 장르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작품에 따라 다를 것이다. 어떤 작품을 읽고 감명을 받고 특정 장소를 떠올리게 되고, 그것으로 내 자신의 일부가 깨어난다면 그 작품은 영감이 된다. 하지만 문학으로부터 나온 발레는 문학 그 자체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다. 문학을 안무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읽는 모든 작품이 무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셰익스피어는 감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단어 없이도 소통하고 이해될 수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와 있는 감정과 관계는 인물들이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이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내 영감의 원천이다. 지금까지 셰익스피어로부터 영감을 얻은 작품을 6편이나 공연했다.”

-하루 종일 발레에만 몰두하는데, 그래도 일상생활이 있을 것 같다.
“일상생활이라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 지금 다양한 일을 맡고 있어 하루하루가 다르다. 발레단장으로서 다양한 업무를 해야 하고, 발레학교 대표로도 재직 중이어서 학교에도 나가 여러 사항을 점검해야 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안무다.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창작 활동을 하거나 발레단의 새로운 캐스팅들을 만나 작업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지난주에는 ‘카멜리아 레이디’ 공연 때문에 파리에 있었고, 이번 주에는 뮌헨발레단이 올릴 ‘한여름밤의 꿈’을 보러 가야 한다. 함부르크발레단 투어 공연도 한다. 종종 컬렉션에 나서기도 한다. 새로운 물건이 나타나면 수집이나 구입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수집품을 관리하는 데도 꽤나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한 여름밤의 꿈’. ©Holger Badekow
안무 지도중인 노이마이어. ©Holger Badekow

-다음 시즌에 계획하고 있는 작품은?
“다음 시즌에 대해서는 되도록이면 말을 아낀다. 보통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알린다. 그래도 살짝 알려드린다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음악에 맞춰 안무를 할 계획이다. 5년 전 첫 3악장에 맞춰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후반부 3악장을 합해 총 6악장으로 완성할 생각이다. 또 푸슈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에 기반한 ‘타티아나’를 초연한다. 존 프랭코의 ‘오네긴’에 대한 나의 대답이라고나 할까.”

-한국의 신인 발레리나들과 작업한 적이 있나?
“박윤수는 정말 흥미로운 무용수다. 개성도 뚜렷하다. 함부르크 발레학교에서 수학했고 함부르크 발레단에도 입단해 함께 작업을 했다. 앞으로 멋진 작품으로 그녀와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서희도 ‘카멜리아 레이디’에서 함께 작업했다. 서희가 이 작품에서 처음 맡은 역이 올림피아였는데 비중은 크지 않았다.”

-한국에서 공연할 계획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공연하고 싶다. 2015년 일본에서 공연할 예정이니 정말 가고 싶다. 한국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으니 꼭 시간을 내서 방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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