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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에 ‘No’라고 말하는 매케인, 초당파 명맥 이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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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06면

‘에 플루리버스 우넘(E pluribus unum)’. ‘다수에서 하나로(Out of many, one)’라는 뜻의 이 라틴어 문구는 미국 상·하원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에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다수의 목소리를 존중하며 화합을 이루자는 의미로 미국 의회의 상징이다. 미국 건국이념과도 궤를 같이해 국가 문장에도 새겨져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일시정지) 사태를 둘러싼 코끼리(공화당 상징)와 당나귀(민주당)의 드잡이 속에 이 화합의 정신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런 와중에 베트남전 참전용사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인 존 매케인(77·5선·애리조나) 등 몇몇 정치인이 당론을 거스르며 화합과 타협을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매케인은 2008년 미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와 겨뤘던 공화당의 중진 의원이다.

당론 반대 소신 당당히 밝히는 미국 초당파 정치

지난 8일 매케인 의원은 원내 발언을 신청해 상기된 표정으로 연단에 섰다. “공화당원이건 민주당원이건 우린 부끄러워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곤 종이 한 장을 꺼내들었다. 셧다운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들의 보상금 지급까지 동결됐다는 신문기사였다.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의 가족이 셧다운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우린 곧 부채 한도를 올릴 것이고, 정부는 곧 제 기능을 되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문제를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는 것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손으로 연단 치며 자기 정당 비판
손으로 연단을 내리칠 정도로 분개한 매케인은 자신이 속한 공화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공화당 의석을 가리키며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우리의 전제는 잘못됐다. 이미 미국 국민은 지난해 대선에서 (오바마를 재선시킴으로써 오바마케어에 대한 지지의) 뜻을 분명히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생각하겠느냐”며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어른스럽게 협상하자”고 강조했다. 발언 허용시간은 15분이었지만 그는 “감정이 격앙돼 이 정도만 하겠다”며 6분43초 만에 연단에서 내려왔다.

매케인의 비판은 공화당 내 소수 강경파인 티파티를 향한 것이었다. 티파티는 공화당 하원의원 232명 중 45명으로 20%도 안 되지만 타협하지 않는 강성 집단이다. 이번 반(反)오바마케어 움직임도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 내년 중간선거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강성 보수의 모습을 보이는 게 정치적 입지 선점에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한 게 틀림없다. 이 같은 반오바마케어 전략을 매케인이 8일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그 직후 MSNBC 등 미국 언론은 “공화당이 둘로 쪼개지는 것 아니냐”고 보도했다.
 
전투기 조종사 출신으로 포로생활
미국 대선 레이스가 벌어지면 후보들은 가족들과 함께 단상에 올라 손을 높이 들어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는 모습을 찍어 뿌리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2008년 대선 당시 매케인에겐 그런 사진이 없었다. 팔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1967년 베트남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격추당해 포로로 잡히면서 얻은 부상 후유증이다.

아버지 존 잭 매케인과 할아버지 존 슬루 매케인 모두 해군제독 출신이다. 아버지는 태평양함대사령관, 할아버지는 항공모함 함장까지 지냈다. 미 해군이 보유한 8800t급 이지스함 중 ‘존 S 매케인’은 그의 할아버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전쟁 후 고국에 돌아온 그는 정치인으로 새출발했다. 당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건 그의 오랜 정치적 DNA다. ‘개성파(maverick)’ 공화당원으로 불리는 그는 이민법이나 동성결혼 허용 문제 등에서 공화당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90년대 초반엔 현 국무장관인 존 케리(민주당) 상원의원과 함께 베트남과의 외교관계 정상화 결의안 등을 통과시키며 공화당 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어 공화당이 반대한 담배세 인상 법안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가 러스 파인골드(민주당) 상원의원과 공동 발의한 선거자금개혁법은 2002년 의회를 통과해 지금도 ‘매케인-파인골드법’으로 불린다. 그의 초당 행보는 계속돼 지난 1월엔 민주당의 찰스 슈머(뉴욕), 로버트 메넨데즈(뉴저지)와 손잡고 초당적 이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08년 대선 패배 후 오바마에게 지지를 보내는 승복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는 오바마 당시 당선인에게 만찬 초청을 받았다. 오바마가 “초당적 기여로 나라를 위해 평생 일해온 이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저녁식사”라고 부른 만찬이었다.
 
당론 반대하는 ‘개성파’로 당 대선 후보까지
의회와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저서 『담대한 희망』의 1장을 ‘공화당원과 민주당원’으로 할애하며 “일반 국민들은 양당이 좌우, 보수·진보의 차이를 딛고 따라와 주길 바라고 있다”고 썼다. 오바마 대통령이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척 헤이글은 공화당 상원의원 출신이다. 헤이글은 의원 시절 당론을 거슬러 이라크전 추가 파병에 반대표를 던지며 “이라크전은 베트남전 이후 가장 무모한 외교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화당 내에서도 주로 주 정부를 운영하는 주지사들 사이에선 최근 티파티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공공연히 나온다. 차기 대권 주자 물망에 오르는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셧다운 사태를 놓고 “우리 당이 무조건 ‘노(No)’라고 얘기하는 반대당이 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셧다운은 나라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오바마의 적수였던 공화당의 밋 롬니마저 “셧다운은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현재 미국 정치 지형에서 초당파 정치인들은 그다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지 못하다. 주요 선거 일정을 앞두고 ‘목소리 큰 소수 강경파’가 주목받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셧다운 사태 이전엔 존재감이 옅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지난달 말 21시간19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펼친 후 지지율에 탄력을 받은 게 대표적 사례다. 티파티의 대변자로 강경 보수파의 차세대 리더로 떠오른 크루즈 의원은 지난달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퍼블릭 폴리시 폴링(PPP) 조사에서 지난 7월과 비교해 8%포인트가 상승한 2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지율이 곧 생명줄인 정치인들에게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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