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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세 김철, 미러스 대표 맡아 1년 만에 매출 10배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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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호 07면

동양증권 노조원들이 8일 서울 성북동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자택 앞에서 현 회장의 사죄와 보상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읽고 있다. [뉴시스]

동양그룹이 주요 계열사에 대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가운데 그룹 안팎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양그룹 , 내부에서 무슨 일 있었길래 …

밖에선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과 경영진 처벌을 요구한다. 그룹 내부에선 해체된 전략기획본부를 중심으로 한 ‘공식 라인’과 비선 라인 간에 책임 소재를 놓고 물밑 싸움이 여전하다는 게 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동양증권 노조는 ‘경영진이 사기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하며 동양시멘트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두 번이나 냈다. 현재현 회장이 이미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지만 일각에선 오너 일가의 일부 기업 경영권 재확보 가능성도 언급된다. 복수의 동양 관계자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모든 쟁점에 얽혀 있는 것이 동양네트웍스와 김철(38) 대표다.

2012년 7월 2일 동양그룹의 정보기술(IT)서비스 기업인 동양시스템즈와 소모성 자재 구매업체인 미러스(Mirus)가 통합한 동양네트웍스㈜가 출범했다. 동양네트웍스는 양사의 기존 주력 사업에 바이오·헬스케어 같은 신사업을 통해 제조·금융에 이은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금은 ‘부도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처지가 됐지만 당시의 꿈은 겉으론 이렇게 야무졌다. 통합법인의 대표는 김철 대표와 현재현 회장의 큰아들 승담(33)씨가 함께 맡았다.

미러스 설립 과정서 기존 임원진과 갈등
동양시스템즈는 1991년 설립된 동양정보통신을 모태로 한 기업이었고, 미러스는 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작고)의 장녀 이혜경(61) 부회장이 2010년 5월 지분 100%를 투자해 설립한 신생사였다. 미러스는 이듬해 증자를 통해 현 회장과 이 부회장 사이의 네 자녀(정담·승담·경담·행담)도 14.3%씩의 지분을 보유해 현씨 일가의 가족회사나 다름없는 성격을 띠고 있다.

미러스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은 2008년 그룹에 입사한 김철 구매총괄본부장이었다. 그는 효율성을 앞세워 모든 그룹 계열사의 구매 업무를 미러스 한 곳으로 모았다. 김 대표는 그룹 물량을 도맡은 데 힘입어 회사 매출을 2010년 말 296억원에서 2011년 말 2575억원으로 1년 만에 10배가량 늘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룹 내 일부 임원과의 갈등도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구매선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던 구매 담당자들이 느닷없는 구매선 변경에 불만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러스에서 보여준 경영실적은 김 대표가 이 부회장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다.

김철 대표는 그의 이력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룹 내에 드물 정도로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자 해명자료를 통해 스스로 밝힌 것이 공개된 이력의 전부다.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졸업은 하지 않았다. 동양 입사 전 솔본 미디어라는 회사에서 대표로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한 신문사 주최 행사에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이혜경 부회장을 만나 자연스레 동양그룹 입사를 추천받았다’는 거다.

기존 경영진 불신한 부회장이 힘 실어줘
결혼 이후 현 회장을 내조해 왔던 이 부회장은 2008년 디자인 최고책임자(CDO)로 그룹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부회장의 경영 참여는 ‘명문대 중심의 기존 경영진에 대한 강력한 불신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 회장을 보필하는 그룹 인사들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말까지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한때 재계 순위 5위까지 올랐던 동양그룹이 외환·금융위기를 거치며 사세가 급격하게 기울자 그룹 창업주의 딸로서 그룹을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에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한 측근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사업하는 걸 봐온 이 부회장으로선 사업이란 학벌을 내세울 게 아니라 발로 뛰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며 “학력·경력 모두 부족해 보이는 김철 대표지만 그의 강한 추진력을 통해 그룹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그는 “(김 대표가) 집안은 꽤 괜찮은 걸로 알지만 고교 시절엔 말썽을 많이 피웠던 것으로 들었다”며 “군대도 부친이 정신차리라고 특공대에 보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함께 일해 보니 적극적이었고 능력도 상당했다”고 전했다.

그룹 내부에선 김 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 부회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동양매직 매각, 웨스트파인 골프장 매각과 같은 중요한 의사 결정에 일일이 간여해 그룹의 구조조정 시기를 놓치게 했다는 것이다. 두 건 모두 결국 매각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룹 관계자 A씨는 “김 대표는 중요한 결정을 모두 전략기획본부에서 했다고 책임을 미루는데 사실과 다르다”며 “과거 주요 결정 때마다 김 대표가 이끄는 이른바 ‘강남팀’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강남팀’이란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동양네트웍스 사옥에서 근무하는 비선 라인을 지칭하는 말로, 이곳에 이 부회장의 집무실도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동양매직 매각 건은 내가 간여했을 때는 이미 거래가 깨진 상태였고, 골프장은 장부가(790억원)보다 200억원가량 낮은 600억원 이하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도저히 팔 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에도 김 대표가 상당한 영향을 발휘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룹 관계자 B씨는 “전략기획본부는 법정관리 신청 사실을 직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김 대표가 법정관리 신청 결정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 역시 부인한다. ‘법정관리 신청 전날, 동양시멘트 재무팀장의 자금 요청을 받고 부도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란 것이다.

한국경영사학회장 남명수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너가 위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비선 라인을 활용할 수는 있다”며 “다만 비선 라인과 공식 라인이 갈등하다가 구조조정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선 라인은 공식 라인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동양네트웍스 통한 새 지배구조 형성 의혹
오너 일가가 동양네트웍스를 통해 법정관리 이후 일부라도 다시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동양시스템즈와 미러스가 통합해 출범한 동양네트웍스의 최대주주(6월 말 현재)는 채권추심회사 티와이머니대부(23.07%)다. 이어 ㈜동양(14.61%), 동양증권(9.25%), 현재현 회장(9.25%), 이혜경 부회장(6.66%) 순이다. 티와이머니대부는 현재현 회장이 지분 80%를 가지고 있다. 티와이머니는 올해 2월 동양네트웍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면서 최대주주가 됐다.<그림 참조>

현재 동양네트웍스는 산하에 동양온라인, 동양인터랙티브, 동양생명과학이 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선 오너 일가가 티와이머니를 지배회사로 내세워 새로운 지배구조를 형성하려 한 것이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그룹 측은 “동양네트웍스는 그룹 차원에서 보면 작은 회사에 불과하고 티와이머니는 유상증자로 최대주주가 되었을 뿐 다른 의도는 결코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동양 창업주 이양구 회장의 부인인 이관희 서남재단 이사장이 동양네트웍스에 1600억원 규모의 오리온 지분(15만9000주)을 증여키로 했다가 법정관리 신청으로 중단된 것도 의혹을 더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증여가 아닌 무상 대여로 남을 경우 이 이사장이 채권자로 인정되면서 향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면에는 이런 의도가 깔려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김대표는 ‘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했다’며 ‘회사를 살리기 위한 지원에 대해 경영권 회복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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