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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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백이 법률적으로 증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때묻은 화제이다. 『자백이 증거의 왕』이던 시대가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군국 일본이나 독재가 횡행하던 시대의 일이다. 현대의 민주 국가에서는 어느 나라이고 피고인의 자백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
우리 나라 헌법 제10조에도 물론 그것이 명시되어 있다.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이것을 유죄의 근거로 삼지 못한다. 따라서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헌법은 또한 피고인의 자백이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도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도 잊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증거 만능주의도 아니다. 불법적으로 획득한 증거는 역시 증거 능력이 없다. 판사는 그 때문에 증거를 채택할 때는 그것이 임의성·진실성이 인정되는 객관적인 상황 아래서 얻어진 것인지 아닌지에 고심 참담하게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상태를 법은 존중한다. 아무리 법이라도 상식의 선을 넘는 일은 삼간다.
이른바 보강 증거에도 강·약이 있는 것은 역시 피고의 이익을 도와준다. 증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제일 강한 증거는 물증이다. 눈으로 떳떳이 확인할 수 있는 물증을 무엇보다 먼저 인정한다. 그 다음 되는 것이 서증이다. 필적으로 남긴 무엇-. 인간의 증언은 적어도 법에서는 신뢰도가 약하다. 사람의 말은 아무리 이성의 동물이라 지만 기분적인 데가 있기 때문이다. 말 한마디는 복잡한 감정과 욕구와 태도가 윤색된 산물이다. 자기 자신은 무의식할지 모르지만, 건성으로 지껄이는 한마디도 알고 보면 감정이 작용한 것이다. 더구나 어떤 강박된 분위기 속에서 빚어 나온 한마디는 착잡 미묘한 제품일 것이 너무도 뻔하다. 법은 바로 이 점을 인정한 것이다.
보강 증거라는 이름 밑에 증인의 증언 또는 참고인의 증언을 뒷받침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그들의 자백조차도 피고인 자신의 자백과 마찬가지로 임의성과 진실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증거의 일부로 간주한다. 영미법에서는 공동 피고인·공범자의 자백조차 자백한 자에 대해서만 증거로 삼는다.
피고인이 전과 후에 임의로 자백을 뒤집는 것은 민주 헌법에서 보장된 자신의 권리 주장을 위한 무기일수도 있다. 법을 악용할 수야 없지만, 그러나 이것도 귀중한 권리 존중의 방패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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