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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잡아떼다 수세 몰려 … 부인도 돌아선 스트로스칸은 몰락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3호 10면

스캔들에 따른 수세 국면을 거짓말로 모면해보려 시도한 사례는 외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진실 공방에 무너진 해외 유명인사들

1990년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빌 클린턴(사진) 전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5년 당시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 스캔들에 휘말렸다. 연방정부의 셧다운을 계기로 리언 패네타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의 무급 인턴으로 들어온 르윈스키와 클린턴의 관계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았다. 백악관의 법률고문이었던 켄 곰리 듀케인대 교수는 2012년 2월 클린턴과 관련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들은 첫 만남부터 성적 긴장감이 돌았다”고 증언했다. 르윈스키는 1995년 11월부터 1997년 3월까지 10여 차례의 성관계를 가졌다고 증언했다. 처음에 클린턴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성관계 자체를 갖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집요한 수사로 그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하나둘 드러나자 말을 바꿨다. 클린턴은 ‘구강 성교’는 성관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궤변까지 구사했다. 당시 그가 ‘거짓 증언’을 하며 취했던 코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은 거짓말의 상징적 이미지로 지금도 인용되고 있다. 결국 1998년 8월 사실을 시인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

2011년 5월 벌어진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스캔들도 거짓말로 얼룩졌다. 그는 투숙 중이던 뉴욕 맨해튼의 소피텔 호텔에서 청소부를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청소하러 들어온 청소부를 알몸으로 맞이하고 성관계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사건 직후 스트로스칸은 이를 완강하게 부인했다. 피해자의 고소로 구금된 그는 3개월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공소 기각 결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합의금으로 150만 달러(약 16억원)를 물어줘야 했다. 당시 유력한 프랑스 대통령 후보였던 그의 위상은 추락했고, 아내에게도 이혼을 당했다.

두 사건의 결말에 차이가 있다면 부인과 가족의 태도였다. 클린턴이 추문에도 불구하고 임기를 끝까지 마칠 수 있었던 데는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용기와 관용이 있었다. 힐러리는 스캔들이 한창이었던 당시 “우리의 결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다”며 클린턴을 적극적으로 감쌌다. 노만희 신경정신과의사회장은 “혼외 스캔들이 벌어질 경우 가장 큰 피해자는 사건 당사자의 부인과 가족이다. 이들이 직접 등장해 용서를 하면 비록 공인이 저지른 일이었다 해도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사건 당사자에 대한 여론의 동정심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스트로스칸의 아내였던 언론인 출신의 앤 싱클레어도 처음에는 남편을 도와 변호사 팀을 꾸려주는 등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계속 드러나는 남편의 예전 성추문과 거짓말에 끝내 그의 곁을 떠났다. 스트로스칸은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 국가와 몇몇 소규모 투자은행의 고문을 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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