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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증보험제로 박물관 입장료 낮추고 관장 인사권 보장, 필요한 인재 뽑게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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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호 14면

김홍남 1948년 경남 진주 출생. 이화여고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화여대 교수·민속박물관장을 지낸 뒤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됐다. ‘조선시대 도자기전’ ‘18세기 조선 회화전’ ‘민화와 장식병풍’ 같은 전시를 기획해 호평을 받았다.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 다음 세대의 감성지능(EQ) 발달과 창조경제의 동력으로 박물관·미술관 집중 육성을 꼽았다. 이에 따라 김홍남(65·사진)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 만나 구체적인 방법론을 들어봤다. 김 전 관장은 지난 2006년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61년 만에 여성으로는 처음 관장직에 올라 화제를 뿌렸다. 그는 “예술품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전제하에 기증자에게 대대적인 세금혜택을 주고, 박물관에 정부보증보험제도를 적용해 입장료를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 첫 국립중앙박물관장 지낸 김홍남 박사

-우리 박물관과 미술관의 현주소는 어떤가.
“박물관과 미술관은 소중한 문화 자원이자 EQ의 원천이다. 수많은 거장과 예술가들이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감각과 영혼을 훈련시켰다. 한마디로 보물창고다. 우리나라 박물관과 미술관도 양적으로는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

-우리 국·공립 박물관이 개선할 점은?
“100%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젠 자립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국가가 60%가량만 예산을 지원해주고 40%는 자체 조달한다. 무엇보다 인사권이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전문기관이기 때문이다.”

-외국 박물관은 자립을 어떻게 이루었나.
“우선 재단을 만들어 후원 조직과 이사회를 출범시킨다. 이어 기부자를 끌어들이고 계속해서 여러 형태로 후원회를 추가해간다. 자체적으로 돈벌이에도 나선다. 이렇게 해서 재정을 확충한다.”

-우리 국·공립 박물관은 그런 점에서 어떤가.
“가장 큰 문제점은 관장에게 인사권이 없다는 거다. 필요한 인재를 쓸 수 없는 구조다. 또 국립 박물관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이다. 자연히 이사장도 문체부에서 별도로 위촉하니 박물관의 자율권이 약하다. 두 번째 문제로는 기금 모집을 못하게 돼 있다는 것이다. 또 돈벌이를 통해 재정을 확충할 수도 없게 돼 있다. 예를 들면 특별전을 열고 이와 관련된 상품을 개발해 팔려 해도 이런 프로세스에 박물관은 참여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 문제점으로 인해 겪은 애로가 있다면.
“세계적인 석학을 데려와 강연을 시키고 싶어도 현행 강사 초빙 규정이나 여비 제한 때문에 모셔올 방법이 없다. 대안으로 후원회를 통해서 비용을 염출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없어 못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정부로부터 40~60% 지원을 받지만 운영은 스스로 책임지는 제도라서 행정이 탄력적이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국립 박물관들 사이에 유물 확보 경쟁이 심해 문제란 지적도 있다.
“과거 정부의 문화재관리국이 박물관을 관장하던 시절엔 경주 고분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면 당연히 국립박물관에 줬다. 그런데 문화재청이 자체 전시 기능을 확보한 뒤엔 국립박물관에 유물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립박물관들끼리 유물 확보 전쟁에 돌입하게 된 거다. 구입비로 주어진 국가 예산은 턱없이 적은데….”

-문화재청과 국립박물관의 위상 정립에도 문제가 있다는데.
“두 기관의 역할을 놓고 혼선이 있다. 문화재청은 행정과 문화재 발굴 업무, 전국의 문화재 등록사업을 하면 된다. 그런데 문화재 활용 분야까지 손을 대려 하니 국립 중앙박물관과 충돌하게 된 거다. 속히 조정돼야 한다.”

-우리 박물관과 미술관의 작품 구입 예산이 너무 적은데.
“조선시대 만들어진 달항아리 한 점에 100억원가량 할 것이다. 우리 박물관 예산으로는 턱도 없는 액수다. 선진국에서 배워야 한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은 이럴 경우 우선 이사회를 열어 독지가를 찾는다. 다음으로 소장가를 만나 기증을 독려한다. 미국은 문화재를 기증하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기증을 유도하기가 쉽다. 다만 우리 기업 가운데 ‘동원 컬렉션’은 세제 지원을 고려하지 않고 깨끗하게 기증한 드문 예를 남기긴 했다.”

-우리도 기부자에게 대폭적인 세제 혜택을 주는 게 어떤가.
“그래야 한다. 외국은 기부자에게 60%까지 세제 혜택을 준다. 우리는 겨우 10% 수준이다. 미국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세제 혜택 제도를 실시해 뮤지엄(박물관) 전성시대를 열었다. 박물관이 엘리트 중심에서 대중 시스템으로 전환된 계기다. 국가의 세금으로 작품을 구입해 박물관 문화를 살린 것이다.”

-세제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첫째로 세제 혜택 조치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거래 과정과 금액이 투명해야 한다. 1억원짜리 그림이 2억원이나 5000만원에 거래된 것처럼 속여선 안 된다.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장인 크리스티나 소더비는 거래 과정에서 금액을 정확히 밝힌다. 소장자와 경매자, 중간 화랑, 구매자 사이에서도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 둘째, 감사기관이 있어야 한다. 미국은 기증되는 예술작품에 대한 감사기관이 연방정부 차원에서 설치돼 있다. 감사위원들이 정기적으로 교체되고 배심원제로 운영돼 투명성이 높다. 이 두 가지를 완비한 뒤 대대적인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

-고가 미술품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인식도 문제 아닌가.
“투명성이 확보된다면 예술품 구입에 대해 정부와 사회가 긍정적인 시각을 가져줘야 한다. 고려의 명품인 나전칠기나 불경함은 국내에 한 점도 없다. 일본에 몇 점이 있는데 20년 전엔 30억원 수준이었다. 지금은 100억원 선으로 올랐을 것이다. 누군가 100억원을 주고 국내에 들여온다면 세제 혜택을 줘야 한다고 본다. 기증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 박물관의 전시회 입장료가 비싸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가 보증하는 예술품 보험제도가 없어서 그렇다. 그러다 보니 전시 한번 하는 데 막대한 보험료가 들어간다. 또 민간 기획사가 돈을 끌어모아 전시회를 여니 입장료가 비싸지는 것이다. 속히 정부 보증 보험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에 흘러나간 우리 문화재 환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파르테논 신전에서 대영박물관으로 빠져나간 유물이나 경주 석굴암에서 외국으로 빠져나간 유물 등 유적지 현장에서 빠져나간 유물은 속히 환수돼야 한다. 그러나 몇 단계를 거쳐 루브르박물관 등에 소장돼 한국을 알리고 있는 유물은 환수될 수 없다. 그 외의 유물들은 개인의 사재나 기금을 통해 구입해야 한다. 중국은 대형 기금을 만들어 해외로 빠져나간 문화유산을 사들이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 학생들이 많이 오게 하려면.
“국·공립 박물관은 학생들에게 무료다. 초등학생들은 많이 온다. 그런데 중·고교생은 입시공부 때문에 오지를 못한다. 입시제도에 박물관 방문 평가 항목을 넣어 중·고생들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문화는 정부 주도로 발전하긴 어렵다. 민간 창의력이 극도로 진화하게 해야 한다. 예술품 거래나 기부 과정에서 공정성·투명성을 확보한 뒤 대대적인 세제 혜택을 해주기 바란다. 박물관 입장료를 낮추기 위해 정부보증보험제도도 도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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