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젠 복지 '압축성장' 경쟁보다 내실화에 힘쓸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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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바야흐로 복지 시대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통령 선거에 맞춰 정치권에서 경쟁적으로 복지 확대를 공약하면서 수많은 정책이 도입됐다. 이미 0~5세 무상보육, 암·심장병·뇌질환·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 질환 보장, 저소득층 복지 확대 등이 시행 중이다. 이렇듯 복지정책이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관리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효율이 떨어지거나 예산이 낭비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지적된다. 본지는 ‘복지 예산이 새고 있다’ 3회 시리즈를 통해 이를 점검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 3월 여야 만장일치로 전격 도입된 무상보육은 곳곳에서 허점투성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원 분담을 놓고 수시 충돌했고, 예산 누수도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무상보육료를 이용 시간을 따지지 않고 지원해 실제 이용 시간의 2배에 이르는 보육예산(연간 약 1조1400억원 추정)이 낭비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도 4대 중증 질환 진료비의 법정 본인부담금을 2009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5~10%로 낮추자 일부에서 일반 질환에도 적용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적 판단을 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적극 나서서 복지비용 문지기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의료복지 공약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필요도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행위 위주로 짜인 의료복지체계를 환자 입장에서 새롭게 손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다 적은 예산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호스피스나 간병비 지원 등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현장 목소리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일부의 복지지원금 빼먹기도 심각하다. 지난해에만 기초수급자 7392건, 기초노령연금 4만8989건의 부정 수령이 적발됐지만 사회복지통합관리망에 최신 자료가 없어 이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복지 업무가 가히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현장 관리 인력·시스템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창구 병목현상 때문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중복사업 조정, 읍·면·동 사회복지센터 설치, 민원심사 3단계 심의회의 설치, 업무 표준화 후 직무 재설계와 인력 재배치 등 복지 집행 효율화 종합대책을 세워야 한다. 복지정책을 늘리는 것보다 새는 예산부터 우선적으로 막아 기존 복지 제도의 효율을 높이고 내실화를 기하는 일이 더욱 시급하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이젠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복지는 더 이상 특정 정파나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야 모두 인기몰이나 득표를 목적으로 삼아 경쟁적으로 복지 관련 정책을 내놓아선 곤란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복지는 사회 여건과 재정 부담 능력에 맞춰 발전시켜야 지속 가능해진다는 전문가들의 말도 새겨들어야 한다. 이젠 정부도, 정치권도 지속 가능한 복지를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