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복지부 장관과 청와대·여권의 갈등이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진 장관이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수차례 사퇴 의사를 전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항명 파동에 진실 공방까지 뒤섞였다.
진 장관은 29일 오후 서울 용산의 자택 앞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사퇴 의사가 전달됐는지 여부는)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면서도 “사우디 출장 가기 전에도 사퇴 의사를 얘기했고, 여러 차례 얘기하긴 했다”고 말했다. 친박계 국무위원인 자신조차 대통령과 직접 대화할 수 없는 상황임을 부각함으로써 권력 핵심 내부에서의 소통 부재를 우회적으로 지적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기춘 통해 전달” vs “사퇴, 총리 통해야”
이에 대해 청와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당 대표) 비서실장까지 했고 3선 의원인데 상식에 맞지 않는다. 장관이니까 당연히 사퇴한다면 총리를 통해야 하는데. 혼자서 머릿속에서만 그렇게 (의사를) 개진했다는 상상을 했는지는 몰라도… 참 희한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위의장 지낸 사람이) 이제 와서 오리발 내밀면 되느냐”고 덧붙였다. 하지만 권력 내부 사정에 정통한 친박계 한 중진 의원은 “아마 진 장관과 대통령이 전혀 논의가 안 됐던 것 같다”면서 “(청와대 구조상) 아무도 청와대에 (다른) 의견을 전달할 사람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친박계 “일 터지면 먼저 도망가는 사람”
새누리당 내 친박계 인사들도 진 의원을 성토하고 나섰다. 홍문종 사무총장은 “대통령이 믿고 맡겼으면 끝까지 대안을 찾고 추진하는 게 옳다. 온 국민이 바라보고 있는데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영남권의 친박계 의원은 “소신이 다르다고 갑자기 사표를 내는 건 국정운영에 막대한 지장을 주는 행위”라고 말했다. 과거 진 장관이 박 대통령과 여러 차례 결별했던 걸 지적하며 원색적 비난을 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박 대통령과 가까운 한 중진 의원은 “진영이란 사람은 옛날부터 일 터지면 먼저 도망가는 사람”이라며 “그가 더 이상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또 “별명이 돌박(돌아온 박근혜계) 아니냐. 이 정부의 심벌처럼 된 사람이 정말 너무한 것 아니냐. 가만두지 않겠다”(수도권 출신 의원)는 비난도 터져나왔다.
당내에선 원래 ‘이회창 사람’이던 진 장관이 박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비서실장→당 정책위의장→인수위 부위원장→복지부 장관으로 출세가도를 달려온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각별한 관심 때문이란 게 정설로 돼 있다. ▶호남 출신의 ▶수도권 의원이란 새누리당에선 보기 힘든 ‘스펙’을 갖추고 있어 중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영남권의 친박 의원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이 인사를 할 때 떠나려는 사람에게 과도한 관심을 두는 걸 그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이날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건 잘못됐다는 걸 되풀이하며 사퇴 번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스스로 ‘루비콘 강’을 건넌 셈이다. 오후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조깅에 나서는 등의 여유도 보였다.
진 장관 “기초·국민연금 연계 누누이 반대”
진 장관은 집을 나서면서 기자에게 “자기 자신도 반대해 왔던 걸 어떻게 꼭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나”며 “양심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청와대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국민연금과의 연계는 안 된다고 여러 번에 걸쳐 얘기했고, 안이 확정되기 전에 ‘내가 연계를 반대했는데, 만약 연계안으로 결정되면 난 복지부 장관으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렇게 말해놨으니 (장관직 수행을) 더 할 수가 없다.”
-정홍원 총리와 대화할 때 사의를 접은 것 아니었나.
“그 자리에선 뭐 아무 말도 못하게 해서….”(웃음)
-무상보육 재원도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정치권에서 한 약속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본 건데…. 기재부는 기재부의 입장이 있고 복지부는 복지부의 입장이 있는 거니까 갈등까지는 아니고….”
-국회로 돌아가나.
“그래야죠.”
글=권호·이서준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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