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없는 분노가 사라지고 맹렬히 짖던 마음이 녹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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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호 26면

저자: 장석주 출판사: 예담 가격: 1만3800원

“몸도, 마음도, 돈도 다 거덜나버린” 시인이 서울 살림을 접고 경기도 안성 호숫가에 작은 집을 지어 내려간 것이 2000년 여름. “딱히 대상이 없는 분노”로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향해 맹렬히 짖고 있던” 그가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집어든 책은 『노자』였다. 권력을 쥔 자들이 백성을 착취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춘추전국시대에 도(道)와 덕(德)을 설파한 사람. 무작정 그를 읽고 또 걸으며 시인은 마침내 깨닫는다.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니며 그저 잠시 점유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몸과 마음이 내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 때문에 욕심과 욕망이 들끓는다는 것을.

『아들아, 서른에는 노자를 만나라』

그래서 시인에게 『노자』는 “지식이 아니라 난꽃처럼 향기로운 지혜”이자 “우리 인생의 지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그런 깨달음을 얻은 저자가 『노자』 81장 중 특히 마음을 움직인 29장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일종의 일기장이다.

그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구절이 ‘대직약굴(大直若屈)’이다.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이 말이 나오는『노자』45장을 풀어보면 이렇다. “크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지만 그 쓰임에는 나쁘지 않다. 가득 채워지면 빈 것 같으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 같고, 크게 뛰어난 기교는 서투른 것 같으며, 크게 훌륭한 언변은 말을 더듬는 것 같이 보인다. 바삐 움직이면 추위를 이기고, 고요한 것은 더위를 이긴다. 맑고 고요하면 천하가 바르게 된다.”

노자에게 구부러진 것은 지극한 부드러움이다. 이미 제 안에 곧음을 품고 있다. 도는 직선이 아니라 곡선의 작용이며 곡선의 일이란 스스로 그렇게 하도록 놓아두는 것이다. 스스로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自然)아닌가-.

그런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노자는 말한다.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으니, 만물을 풀로 만든 강아지처럼 대한다. 성인은 인자하지 않으니, 백성을 풀로 만든 강아지처럼 대한다.” 여기서 ‘풀로 만든 강아지’란 제사 때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의례용 물건을 말한다. 인간 또한 소우주인지라 제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듯 우쭐대곤 하지만 기실 대자연 앞에서 얼마나 미천하고 하찮은 미물인가. 이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옷 매무새와 마음가짐을 조심스럽게 여미어야 할 것 같지 않은가.

노자는 다시 말한다. “성인은 반듯하지만 가르지 않고, 날카롭지만 상처 주지 않으며, 올곧지만 함부로 하지 않고, 밝게 비추나 번쩍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성인군자처럼만 살 수 있을까. 갈수록 이악스러워지는 인심, 못되고 나쁜 사람이 오히려 성공하는 세상에서 정의란, 도덕이란 과연 존중받는 것일까. 아니, 그런 가치가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일까. 억울해 하는 사람들에게 노자는 답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다. 듬성듬성하면서도 빠뜨리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疏而不失)”고.

마디 글 말미마다 시인의 조언이 한 구절씩 담겨 있다. 그는 어느 날 오후 한가한 시간에 바흐의 ‘샤콘느’를 들어볼 것을 권한다. 그 투명한 곡조가 마음 깊이 은닉된 슬픔의 정서를 건드릴 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일을 떠올려 볼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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