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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문화 트렌드] 육체를 구원하는 신흥종교 ‘다이어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42호 28면

20대 여성이 강도 높은 체중감량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돌연 사망했다는 뉴스가 지난주 인터넷을 달궜다. 그에 대한 과거 온라인뉴스 제목을 보면 참 씁쓸하다. 지난해 1월 그가 처음 케이블TV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의 기사를 보자. ‘내장지방 충격’, ‘사람 만날 수 없어 눈물’ 등의 헤드라인으로 그의 고도비만이 극도로 참담하게 표현돼 있다. 그런 만큼 감량에 성공한 뒤의 헤드라인들은 드라마틱하기 짝이 없다. ‘환골탈태’, ‘위 밴드로 인생역전’, ‘화성인, 위 밴드와 함께 지구인 되다’ 등등. 올 1월 방송에서 그가 위장을 묶어 용량을 줄이는 ‘위 밴드 수술’을 감행하고 전보다 많이 날씬해진 모습으로 등장한 뒤 나온 기사 제목들이다.

외모 개조 TV 프로그램

이 케이블TV 프로그램과 그 내용을 재생산하는 기사들이 당연한 듯 밑에 깔고 있는 명제는 ‘뚱뚱하면 불행하고 살을 빼면 행복하다’이다. 물론 고도비만의 경우에는 신체활동에 제약이 있고 건강에도 좋지 않다. 또 적당히 통통한 체형을 심미적으로 선호한 대부분의 옛 문화권에서도 고도비만을 선호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비만을 불행의 근원이나 제거해야 할 악(惡)처럼 묘사하고, 멋진 몸매를 이상적 경지로 여기며, 다이어트를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한 수행과 교리처럼 전도하는, 한마디로 이렇게 몸이 종교화된 시대는 찾기 힘들 것 같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자만’ 혹은 ‘허영’(부분).

서구 중세에는 인간이 자신의 외모 등 육체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을 죄악으로 간주했다. 예컨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 중에는 한 여인이 악마가 들고 있는 거울을 바라보는 그림이 있다. ‘자만’ 또는 ‘허영’의 죄를 상징한 것이다. 당대에는 이런 그림이 많이 나왔는데 물론 꽤 위선적이기도 했다. 그 시대에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을 선호했고 특히 여성은 외모에 따른 차별을 심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위선은 인간의 육체와 외모에 대한 관심과 숭배를 어느 정도 제어하는 구실을 했다.

그런데 현대에는 위선이라는 최소한의 고삐도 끊겨버렸다. 케이블TV 프로그램 등의 매체가 앞장서서 ‘외모 개선=불행 끝, 행복 시작, 인생 역전’이라는 종교적 교리를 설파한다.

이와 관련,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1970)에서 “육체가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가는 하나의 문화적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에 인간이 (적어도 대의적으로는) “영혼의 구원”에 주로 관심을 가졌는데, 이제는 “육체의 구원”에 집중한다고 했다. 건강 관리에 대한 거의 숭배에 가까운 관심, 젊고 아름다워지기 위한 미용, 날씬해지기 위한 다이어트 등이 “오늘날 육체가 구원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우리 육체를 구원하시는 것들’에 이제 성형수술까지 포함돼 신성한 포장이 덧씌워질 참이다. 최근 종영한 한 케이블TV의 성형수술 프로그램과 관련한 온라인뉴스 제목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성형으로 고친 건 삶이었다’, ‘논란을 넘어 감동으로’ 등등.

물론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람들은 실제로 외모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어 왔다. 하나 가족의 학대를 받는 등 믿기 힘들 정도로 처절한 사연들이 펼쳐지고, 누가 더 불행한지 경합까지 벌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방송이 앞장서 ‘못생기고 뚱뚱하면 이런 꼴을 당하기 마련’이라고 세뇌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이 프로그램은 출연자가 고민하는 부분뿐만 아니라 전신성형까지 해주는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 마침내 환골탈태한 출연자의 이미지 위로 ‘눈·코·안면윤곽·임플란트·지방흡입…총비용 얼마’라는 텍스트가 뜬다. ‘자세한 수술정보는 홈페이지에서 확인’이라는 메시지도 함께. 대체 누가 보라는 것인가. 외모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외모 개선=인생 역전’의 믿음으로 끌어들이려는 유혹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위선의 고삐도 없이 육체의 구원을 위하여 폭주하고, 그 부작용과 그로 인한 죽음에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대,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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