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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행복 리포트 … 고통을 껴안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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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0월 주제는 ‘가을이 익다, 행복을 긷다’입니다. 세계적 석학 조지 베일런트, 삶의 애환을 보듬어온 소설가 박완서, 정신과의사 서천석과 함께 이 가을 마음의 곳간을 채워보시기 바랍니다.

행복의 비밀
조지 베일런트 지음
최원석 옮김, 21세기북스
528쪽, 2만1000원

“행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온다. 더 이상은 없다.”

 일찍이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했다는,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베르길리우스는 자신의 말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 무려 2000만 달러의 연구비를 들여, 75년 동안 계속된 연구는 풍성한 사례와 데이터로 이를 증명한다.

 성공한 사람 대부분은 서른이 되기 전에 사랑을 알았고 그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이야기다. 단 여기서 사랑은 남녀간 사랑일 필요는 없단다.

 지은이는 이와 함께 심리적 ‘방어기제’의 중요성도 거론한다. 불안한 느낌과 생각을 의식 안에 담아둠으로써 그들 갈등 요인들간에 최적의 균형상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 성숙한 방어기제로 이타주의, 유머 그리고 미래에 다가올 고통을 알아차리는 ‘예측’,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만족스러운 상황을 찾는 ‘승화’ 등을 예시한다. 그는 염증이나 열병을 앓을 때 겪는 통증이 사실 치유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다며 고통과 갈등을 견디고 수용하는 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고, 누구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에 담긴 든든한 교훈이다. 아동기 환경이나 신체적 요인이 한 사람의 성공과 행복에 결정적이고 영구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란다. 처음부터 성공하거나 실패할 운명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성인이 돼서도 사람은 발달한다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꼼꼼한 데이터로 보여준다.

 애덤 뉴먼에 관한 사례 연구가 그렇다. 탄도미사일 공학자, 사회학 교수, 도시계획자로 다양한 삶을 산 그는 600쪽에 이르는 설문조사에서 어린 시절이 행복했다는 표현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러나 완벽주의자에, 극단적 보수주의자, 아는 사람은 많지만 친구는 없던 뉴먼이 나이가 들고 행복한 결혼생활이 어린 시절의 끔찍함을 완충하면서 바뀐다.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는 것은 부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인생을 단순한 계산, 생각, 그리고 논리로만 살 수 없다”고 믿게 된 것이다. 종내는 70대에 암으로 죽어가면서 연구팀에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에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했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가 쓴 이 책은 1938년 시작된 ‘하버드 대학교 성인발달연구’의 자료를 분석한 학술보고서다. 그러니 말랑한 책 제목과 달리,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가 아니고 행복의 비결을 일러주는 영적 안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초 연구비를 후원한 이의 이름을 따 ‘그랜트 사회적응연구’로 불렸던 이 프로젝트는 6차례에 걸쳐 선발된 하버드대 대학생 268명의 평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추적, 조사, 분석한 것이다.

 42년간 연구 책임자로 일했고, 그간 『행복의 조건』 등 연구성과를 해석한 책을 낸 지은이가 이번엔 그 중 24명의 사례를 들어 ‘무엇이 성숙한 인생을 좌우할까’ ‘결혼이 행복을 보장해줄까’ ‘90대까지 행복할 수 있을까’ 등을 실증적으로 탐구했다. ‘교양 있는 백인 남성’을 대상으로 했다는 모집단의 한계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보스턴 젊은이들을 1940년부터 추적 조사한 ‘청소년 범죄에 관한 글루엑 연구’에 스탠퍼드대 여학생들의 삶을 1920년부터 2011년까지 조사한 ‘터먼 연구’ 등과 비교해 보완했다.

 연구목적이 병리학에서 시작해 정신의학·발달심리학으로 뻗어나가기에 이 책은 만만하지 않다. 그래도 행복에 이르는 지혜와 영감을 얻을 수는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에서다.

 “정치나 연구나 삶이나 시간이 지나야 진실이 드러난다. 몇 년으로는 부족하며 수십 년은 되어야 한다” “(의대 신입생인) 여러분에게 줄 나쁜 소식은, 우리가 지금 가르치는 것 중 절반은 언젠가 오류라고 증명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쁜 소식은 그 절반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족: 행복에 관해 ‘알고’ 싶기보다 행복하고 싶은 독자라면 각 장의 끝에 있는 지은이의 ‘결론’부터 읽도록 권한다. 각 장 앞 부분엔 프로젝트 자체를 설명하거나 성공하는 노년의 삶에 관한 ‘10종 경기 기준’이나 행복 수준을 측정하기 위한 척도 설명 등 딱딱한 내용이 적지 않아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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