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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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남영호 침몰 사고는 불쾌한 후문이 잇따르고 있다. 원인은 대체로 화물 적재량의 초과로 집약되고 있는 것 같다. 이 객 선의 화물 적재량1백 30t으로 알려 졌다. 사고 당일의 적재량 은 이보다 4배나 많은 5백43t 이었다고 한다.
이 배의 적재 정량엔 서류 상 무려 1백t의 진폭이 있었던 것도 의아하다. 당초의 정량은 1백30t, 그후 2백50t으로 정정(?), 사고 다음날엔 1백30t으로 또 다시 고쳐 적었다.
「엉터리 설계」설도 있다. 남영호 무면허 설계사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혐의 등 받고 있다. 아직 조사중이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침몰은 필연적인 운명이다.
당일의 해군 당직자도 구속되었다. 남영호가 조난을 당한 시간인 영시부터 새벽 3시까지 해양 경찰대의 무전실엔 당직자가 없었다. 마침 그 시간에 당직자는 잠자리에 있었다.
남영호 침몰은 그래도 그처럼 허무한 종말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뼌 했다. 절해의 암흑 속에서 물거품처럼 가라앉은 것은 아니었다. 이웃엔 85t짜리 기선이 있었다고 한다. 이 배에 의해 구출된 한 승객은 많은 사람들이 표류하고 있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 배는 항로를 바꾸지 않았다.
근해엔 해군 함정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SOS는 여기에도 닿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결국 남영호의 침몰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마치 모든 환경 조건이 침몰을 공조한 듯한 불쾌감 마저 준다. 어디 한곳 잘 못되지 않은 데가 없다. 약속들이나 한 것처럼 직무 유기를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바로 우리 나라 함정의 한 단면이나 아닌지 두렵다.
작은 직무들의 유기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이다. 한 무전 사가 잠을 자는 일, 한 해 무 관리가 조그만 기록 하나를 눈감아 주는 일, 한 임 검 경관이 한눈을 파는 일, 조그만 배 한 척이 제 항로를 그대로 가는 일, 한 여인의 절규를 무신경하게 귀 뒷등으로 들어 버리는 일…이 하나 하나의 일들은 실로 하찮은 일상사 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직무 태만과 유기는 한숨에 3백20 여 명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다. 비록 말단 관리일 망정, 그 하찮은 책임을 포기하고 내 던질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큰 파문으로 번지는가를 이번 사고는 뼈저리게 교훈하고 있다.
『백발의 노인이 무거운 짐을 지고 노상을 가는 광경이 눈에 뛴다면, 그 정치는 다 그른 정치이다.』
맹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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