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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때부터 복지공약 급증 … "제대로 지킨 것 별로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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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역대 정부들은 복지 공약을 어느 정도나 이행했을까. 일부 제도를 고치는 것을 제외하고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복지 공약을 제대로 지킨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복지 공약을 축소하거나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대통령이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공약과 관련한 대통령의 사과가 두어 차례 있기는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백지화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김영삼 전 대통령도 쌀 시장을 개방하면서 사과한 적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를 한 경우는 대부분 가족·친인척·측근들의 비리 때문이었다. 복지 공약을 축소했다고 사과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이다.

 복지 분야 공약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 때는 김대중정부 때부터다. 1997년 15대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생산적 복지’(복지에 자활의 개념을 도입한 것)를 주창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기초연금과 만 5세 무상보육을 약속했다. 하지만 두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만 5세 무상보육·교육, 임산부 무료 건강검진 등을 공약했으나 역시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이명박정부도 많은 복지 공약을 했다. 기초노령연금을 두 배 이상으로 올리고 장기요양보험을 경증치매환자에게 적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정치권이 재정 조달 방안 등을 면밀히 따져 공약을 내걸지 않았고, 공약 이행 여부를 따지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래서 대통령이 사과를 하거나 야당이 그것을 요구한 경우도 없었다. 익명을 원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박근혜정부 이전 복지 공약 중에서 제대로 지켜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과거를 떠올리며 새누리당이 26일 볼멘소리를 했다.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집권한 지 1년이 안 된 상황에서 ‘공약 파기’라는 말이 무엇인가.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되짚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억울할지 모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박 대통령이 사과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지난 대선에서 복지가 핵심 쟁점이 됐기 때문이다.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면 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조흥식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양대 쟁점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복지 공약 이행에 민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초연금 파동이 향후 선거에서 후보들이 복지 공약을 신중하게 내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이광재 사무총장은 “‘줬다 뺏는 것’(기초연금 축소를 지칭)이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라며 “과거처럼 대선 이후에 공약을 그냥 무시할 수 없는 정책 논쟁의 시대가 왔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조 교수도 “복지를 하려면 국민 합의를 거쳐 증세를 하는 게 맞는데 그런 것이 없으면 인기 위주의 공약으로 전락한다”며 “이번 일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을 내걸지 못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장주영·김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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