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 대통령은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다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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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하면서 기초연금 축소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는 발언을 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던 계획이 소득 하위 70% 노인들에 대한 차등 지급으로 변경된 데 대한 입장 표명인 셈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에선 어려운 노인들은 거의 대부분(지급 대상의 90%) 월 20만원을 꽉 채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당초의 공약을 못 지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또 박 대통령이 임기 내 반드시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으나 현재의 재정 여건을 감안하면 이 역시 어려워 보인다.

 이유가 무엇이든 핵심 공약을 수정한 이상 대통령은 국민에게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흔쾌히 사과했어야 했다. 이어 앞으로의 실행 계획과 현실적인 대안을 함께 밝혀야 했다. 대통령 눈치나 보는 장관들 죽 모아놓고 아무리 ‘죄송한 마음’이라고 해 봤자 국민에게까지 사과의 마음이 전달되진 않는다.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대통령의 권위나 신뢰가 추락하는 건 결코 아니다. 최고 국정 책임자로서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을 성실히 다하라는 것이다. 사과와 설득의 고통을 피해선 안 된다.

 돌이켜보면 소득 상위 30%를 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정도는 설명하기에 따라 충분히 국민의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무리한 공약을 억지로 실행한다면 우리 경제에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위험을 불 보듯 한 상황에서 초반 궤도 수정을 잘못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획일적으로 지급하는 연금이 우리 경제 형편에 합당한가 하는 근본적인 의구심도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공약에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결과적으로 약속을 못 지킨 데 대해 사과한 뒤, 대안을 설명하면서 정면돌파를 했어야 했다. 그게 원칙과 소신의 리더십이다. 복지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재정의 부담능력을 벗어나선 곤란하다. 국민도 이를 잘 이해한다.

 월 20만원이 부자에겐 강물에 물 한 방울 더하는 셈이지만 빈곤층에겐 간절한 물 한 모금일 수 있다. 제한된 재정으로 복지 효과를 높이려면 절실한 계층에 보다 두터운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교한 전달체계를 다듬어야 한다. 그게 지금 정부에게 던져진 과제다.

 한편 민주당은 기초연금 축소를 ‘공약 파기’로 몰아세우고 있다. 하지만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민주당이 소득 상위 30%에게도 기초연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모순이다. 민주당은 또 중상층 봉급생활자들의 소득세를 높이는 세제 개편안이 처음 나왔을 때 ‘세금폭탄’이라며 비난하지 않았나. 일관성 있는 논리를 찾기 어려운 자세다. 그동안 장외투쟁을 너무 열심히 하는 바람에 이성이 무뎌진 건 아닌지 자기성찰을 해야 할 판이다. 민주당은 합리적인 비판과 현실적인 대안을 내놔야 수권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