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글 쓰게 해주세요' 성모를 향한 기도 쉼 없으리…

중앙일보

입력 2013.09.27 00:24

업데이트 2013.09.27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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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최인호 선생이 뜻밖의 말씀을 하신 건 2010년 가을, 독서당길 작업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아마도 선생이 침샘암을 선고받고도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겠다. 견디기 힘든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가 거듭됐을 그 2년의 고통을 내가 어떻게 짐작하겠느냐마는 내가 염려한 것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의기소침이었다.

병상에 눕기 전, 선생이 뭔가에 대해 말씀하실 때면 나는 늘 봄날의 숭어를 떠올렸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청년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그에게 천직과 같다. 그런데 죽음이라니. 어떤 사람이 있어 그에게 그걸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또 그 누구에게도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게 죽음이니 죽음이라는 크나큰 고통 앞에서 인간은 오히려 외로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 라고 나는 혼자 짐작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고 처음 뵈었을 때, 최인호 선생은 이미 그 진실을 경험한 듯 보였다. 그는 방사선 치료를 받은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나를 맞이했다. 환하게 웃는 미소는 여전했는데도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던 그 청년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평생 고생만 해서 몸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시골 할머니 같았다. 병 앞에 인간의 몸이 그토록 연약하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서러울 정도였다.

 2010년 가을이라면 그렇게 위태위태한 선생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날들 중 하나였으리라. 무슨 얘기 끝엔가 그가 문득 내게 돌아오는 봄에 장편소설을 출간할 테니 발문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다. 장편소설을 새로 쓰신다는 말씀이냐고 다시 여쭸다. 그랬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반인도 아니고 평생 장편소설을 쓰신 분이, 아니, 도대체 어떻게 장편소설을 쓰신다는 것인지. 장편소설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선생이 가장 잘 알 것이기에 이런 역설적인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쓴다고 했다. 방금 쓴 이 문장은 내게 마치 ‘그는 산다고 했다’로 읽힌다. 실제로 선생의 ‘쓴다’는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

 그렇게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었다. 그런 일들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그리고 2011년 봄, 최인호의 신작 장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의 원고가 내 손에 들어왔다. 원고를 다 읽고 나서야 나는 내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진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청년 최인호가 바로 그 원고 속에 있었던 것이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는 그가 청년 시절부터 써온 주제가 고스란히 다 들어 있었다. 가장 외로운 순간에 그에게는 소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생에게 청년이란 소설과 동의어였다.

 그 무렵, 성모를 향한 선생의 기도는 다음과 같았다.

 “아이고 어머니. 엄마. 저 글 쓰게 해주세요. 앙앙앙앙. 아드님 예수께 인호가 글 좀 쓰게 해달라고 일러주세요. 엄마, 오마니! 때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드님은 오마니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못 하실 것입니다. 앵앵앵앵. 오마니. 저를 포도주로 만들게 해주세요.”

 선생은 자신의 이런 기도를 막무가내 떼쓰기 기도라고 했다.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에 골무를 끼워가며 매일 30매씩 손으로 써 내려간 장편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바로 그 기도의 응답이었다. 선생은 늘 소설가로 죽고 싶다고 말했으니, 지금은 그의 소망이 마침내 이뤄지는 가을이다. 이젠 편히 쉬셔도 될 테지만, 아마 내가 아는 선생은 지금도 계속 소설을 쓰고 계실 듯하다. 거기가 어디든.

 그럼에도 이제와 새삼 그리운 것은 새로 펴낸 소설이라며 책을 내게 건네던 그 순간이다. 이제 다시는 그럴 일이 없겠지. 내가 선생의 신작을 읽는 일은 이제 내가 사는 이 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겠지. 나는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으면서 선생은 펜으로 책 앞에 뭔가를 쓴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는 것처럼 별 일이 아니라는 듯이 그는 내게 책을 건넨다. 그럴 때 보면 웃는 그의 얼굴이 눈부실 정도로 환하다. 책을 받아서 몇 장 넘기면 거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세로로 써 내려간 글자들이 보인다. ‘사랑하는 김연수’.

 고등학교 재학 중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로서 선생의 천재성, 감각적인 문체와 현대적인 주제로 한국 소설에 기여한 공로, 그의 소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청춘의 한때를 보낸 수많은 독자들의 성원 등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하니, 나는 오로지 이 사랑, 영원한 청년이 내게 건넨 이 사랑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가 좋아했던 아폴리네르의 시로 먼 길에 나서는 선생을 배웅하고자 한다.

 “그가 말했다./벼랑 끝으로 오라./그들이 대답했다./우린 두렵습니다./그가 다시 말했다./벼랑 끝으로 오라./그들이 왔다./그는 그들을 밀어버렸다./그리하여 그들은 날았다.”

 부디, 이제 두려움 없이 훨훨 날으시길.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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