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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ia 포커스] 러시아 힙스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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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플레밍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인문학부 소통예술학과 부교수

러시안 힙스터는 누구인가? 서양 힙스터의 아류나 한 종류인가 아니면 이름만 같은가. 20세기의 거의 모든 반문화적 요소를 하나의 스타일, 때로는 한 의상으로 융합해 표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부류. 이것이 서양의 ‘정통 힙스터’에 대한 최신 정의다. 힙스터는 시공간을 압축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한다. 다 해진 카디건을 훔쳐 입고 비틀스 특유의 더벅머리인 몹톱헤어 스타일에 밥 딜런의 웨이파이어 선글라스를 쓰고, 1970년대식 콧수염을 기른다. 아니면 할머니 스웨터나 팔레스타인의 상징인 두건 케피예를 걸친다. 아이폰으로 셀카를 찍고 프랑스산 지탄 담배를 피우며 세서미 스트리트 캐릭터가 그려진 키치한 가방에 체 게바라 전기를 쑤셔 박고 다닌다. 달리 표현하면 힙스터는 지난 50년간의 TV쇼를 섭렵한 사람과 TV를 구경도 못한 사람 사이에 위치한 부류라고 할 수도 있다. 힙스터 스타일은 유행할 게 틀림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80년대 말 경제학자와 사회이론가는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방화(localization)’를 섞은 기괴한 합성어 ‘세방화(glocalization)’에 푹 빠졌다. 이 어색한 용어를 러시아에 적용할 수 있다.

러시안 힙스터의 정체성은 분명 절반은 서구적이다. 물론 단지 서양문화 제국의 연장이나 그 아류로 볼 수는 없다. 아직은 대중 브랜드의 저속함에 당황하지 않는 러시안 힙스터는 서양 힙스터보다 훨씬 자주 스타벅스에 간다.

서양 힙스터가 소비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중문화와의 관계와 이에 따른 문화 브랜드 형성에 더 민감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첫 세대인 러시안 힙스터는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했고 서양 힙스터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브랜드 다양화’라는 난해한 개념을 이어받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는 이어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근사한 엔터테인먼트 잡지와 웹사이트 ‘아피샤’의 유리 사프리킨 전 편집장은 2003년 러시아 언론을 통해 처음으로 ‘힙스터’란 단어를 접했다. 처음에는 주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스타일에서 살짝 비켜간 패션에 중점을 둔 용어였다. 그러나 몇 년 후 이 말은 경멸의 뉘앙스도 띠게 됐다. 언론에서만 이런 뉘앙스를 사용하는 게 아니다. 공개 시위나 야권 인사의 지지 집회에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힙스터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러시아 언론은 힙스터의 이런 활동을 ‘정치적 신념이 아닌 멋져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운동에 참여하는 충동적인 패션 피플의 퇴폐적인 행동’이라 주장한다. 더 심하면 자유민주주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아를 잃은 사람을 의미하는 ‘뎀시자(민주주의와 정신분열증 합성한 러시아어)’란 무서운 부류로 힙스터를 정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몇몇 러시아 언론인의 머릿속에서 ‘힙스터’가 우스운 사람으로 굳혀질수록 힙스터 스스로 본인이 힙스터라는 사실을 부정한다는 점이다.

크리스 플레밍 웨스턴 시드니 대학교 인문학부 소통예술학과 부교수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또한 Russia포커스 웹사이트(http://russiafocus.c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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