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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제회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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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에 한국은 세계의 지성을 한자리에 모으는 국제회의를 10여차 가졌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경제관계의 몇 차례 국제회의가 있었지만 68년의 세계대학총장회의를 제외하곤 한국의 특수한 현실을 논의한 상담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금년 학계를 포함한 문화계가 주축이 된 여러 국제회의가 잦아짐에 따라 문화계는 분주하고 활기에 찬 한해를 보냈다.
70년에 한국에서 열렸던 학술·문화관계의 국제회의로는 동·서 31개국의 문인 1백86명이 참석했던 제37차 국제「펜」대회(6월29일∼7월4일·「펜」한국본부 주최)를 비롯하여 한국통일에 관한 국제학술회의(8월24일∼29일·13개국 83명 참가·고대아세아문제연구소 주최), 서울국제전기전자학술회의(9월2일∼4일·10개국 46명 참가·대한전기학회와 기타 3개 학회공동주최), 국제방사선가공회의(9월29일∼10월2일·11개국 18명 참가·원자력연구소와 국제원자력기구공동주최), 세계불교지도자회의(10월10일∼12일·14개국 1백21명 참가·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주최), 분단국의 제 문제를 주제로 한 학술「심포지엄」(11월5∼7일·4개국 23명 참가·영남대통일문제연구소주최),「아시아」청년지도자회의(11월16일∼21일·10개국 25명 참가·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 주최), 동북아의 장래에 관한 협의회(12월2일∼5일·한국과 미국에서 45명 참가·한-미 교회국제문제협의회 주최), 국제지식교류를 위한 번역체제「세미나」(12월3일∼5일·5개국 22명 참가·국회도서관주최), 한-미 관계 25년 국제학술회의 (12월3일∼5일·한-미 30명 참가·한국국제관계연구소 주최)등 10여 차에 이른다.
이 같은 세계적 규모의 국제행사가 예년에 없이 거듭 개최된 데에는 그 나름의 풍부한 이유가 있다. 경제발전이나 정치문제 일변도로 기울어졌던 국가적 관심이 문화면에도 눈을 돌려야할 필요를 깨달았고 나아가 그것을 실천했음을 입증한다.
사실 70년대에 접어들어 한국은 경제성장을 통하여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인식을 받기 시작했고 국위선양을 위한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문화계도 세계의 대열에 끼어 들려는 자각이 많은 국제적 모임을 갖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됐으리라 해석된다.
4, 5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국제회의를 가지려면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했다.
큰 회의장이 갖춰져 있지 않고 특히 한국 사회에 대해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불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 사실인데 그 점이 거의 해소된 것이 아닐까. 금년의 국제회의 중 그 규모가 가장 큰「펜」대회의 경우,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 많은 잡음을 일으키고 있었으나 결과는 예상에 그리 어긋나지 않았다.
또한「펜」대회 진행상에 있어 큰 과오 없이 넘기게 됐음은 이 방면 국제대회에 대한 자신을 심어준 것 같다.
어떻든 많은 외국인을 금년 한해동안 끌어들일 수 있었고 이들과의 다면적 접촉을 통해 한국을 이해시키고 세계의 지성들에게 우리의 위치를 인식시켜 주었다는 것은 70년 한국문화의 커다란 수확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겪어가면서『사정해서 끌어온 손님』에게 한국의 어떤 점을 보여주고 이해시켰느냐는 점과 어떻게 한국을 인식시켰느냐하는 문제는 수치나 규정을 따지는 것과는 달라 문화계의 국제회의에 특히 많은 반성의 계기가 되고 있다.
갑자기 모든 여건이 손색없이 국제회의를 가질 만큼 갖추어 졌다고 생각해도 외국인의 눈에 그렇게만 비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펜」대회에 참가했던 한 서구작가는 한국문학을 19세기 수준이라고 혹평했고 불교지도자대회에 왔던 승려들은 서울의 고층「빌딩」을 보고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라고 핀잔했다고 한다. 예외 없이 참가자들에게 관광여행을 시켰지만 그들은 서울과는 너무 격차가 많은 시골풍경에서 난해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는 수행자들의 후일담은 국제회의개최를 재검토 해야할 계제임을 말한다.
힘에 겨운 경비, 더 우기 대부분이 국민의 세금인 정부재정보조로 치러지는 경우 실질적인 소득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참가자들을 유치하기 위해「펜」대회 때는 발표자 이외에도 각국의 정 대표들에게 비행기표와 숙식비를 제공했고, 대회 경비 6천만 원의 대부분이 여기에 쓰여졌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국제회의에서는 정부에 더 많은 재정지원을 요구했고 회의를 벌려만 놓으면 어쩔 수 없이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됐다.
이밖에 다른 하나의 과제는 사후정리에 대한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통일문제회의나 「아시아」청년지도자회의의 경우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그런 대로 한국의 특수사정에 관한 자료교환도 하고, 논문들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그 외 특히「펜」대회에서는 그런 작업 없이 흐지부지 이다.
주제인「유머」에 대해 동-서의 많은 지성들이 의견을 나누었음에도 이를 정리하고 종합하는 작업은 사전계획에도 없으며, 그래서 관심 있는 인사들의 실망을 사고 있다.
국제회의라는 이름만 붙어 외국학자와 지성인들을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태도를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거기 소요되는 노력과 경비에 뒤지지 않는 실질적 소득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신중히 취사선택해 행사를 열어야 한다는데 문화계의 의견은 일치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국제회의를 운영하는 전문요원을 양성하고 확보하여 가장 경제적인 회의 관리를 해야한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것은 당국의 문화정책에 충분히 반영돼야 할 것이다.
IPI 총회나 국제「펜」대회의 경우, 외국에서는 주제 발표자에게 여비정도 지급하는 것이 통례이다. 흔히 해외의 국제회의에 한국에서는 관록이나 직위에 따라 참가자를 파견하는 실정인데, 그러나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는 각 단체의 사무장 급 인사를 파견함으로써 능률적인 대회 운영 법을 익히도록 해야 하리라는 의견마저 제기되고있다. <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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