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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미당문학상] 수상작 '내일은 프로' 시인 황병승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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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황병승 시인은 “비열하게 보이게 찍어달라”고 했다. 수상작이 16쪽에 달하는, 실패를 다룬 시인 터라 활짝 웃는 건 민망하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요?” 제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전화에 황병승(43) 시인의 첫 반응은 이랬다. 수상 통보를 하는 쪽이 당황할 만큼, 예상하지 못한 일격이었다.

 황병승. 그는 요즘 한국시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시인 중 한 명이다. 2005년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는 2000년대 한국시의 전위성을 대표하는 기념비로 여겨졌다. 미래파 논쟁 등 문단 담론의 핵심에 그가 있었다.

 그러니 이 ‘문제적 시인’의 수상은 놀랄 일은 아니다. 되레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당사자가 의아해하는 건 어쩌면 그에게 조금은 야박했던 문단의 분위기 탓이었을 터다. 미래파를 서정시의 전복을 꾀하는 일군으로 여겨온 곱지 않은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것도 이유였다.

 “문단의 주목과 관심이 글을 써나가는 데 때로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 정반대가 되기도 해요. 하지만 그에 따르는 역차별도 무시할 수 없어요. 결국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인 셈이죠.”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죽했으면 동료 강정 시인과 내기를 했을까. 상을 받으면 상금에서 100만원을 준다고. “강정한테 전화 오면 안 받을 거에요.”(웃음)

 사실 이 ‘문제적 시인’은 꽤 까다로운 취재원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 직접 얘기하기를 싫어하는 까닭에 인터뷰를 꺼려왔다. 몇 차례 거절도 당했다. 문예지의 좌담에 나선 적도 없고, 산문도 쓰지 않았다. 시 외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거의 봉쇄돼 있었다. 신비주의로 여겨질 만큼.

 “신비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에요. 시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고, 개인사를 구구절절이 늘어놓고 싶지 않을 뿐이죠. 습작시절, 시집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시인의 설명을 듣고 싶지도, 시인의 개인사를 알고 싶지도 않았어요. 시인에 대해 알고 나면 오히려 시가 제대로 읽히지 않아서요.”

 이해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시인이 답안을 내주면 의미가 고정돼 버리기 때문이란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의 시가 어디 그렇게 녹록한가. 따라가기에 숨이 차고(김행숙 시인), 격렬한 독서가 필요(이장욱 시인)할 만큼 그의 시는 힘이 세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치열함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고, 그런 시를 읽을 때 자극을 받으니까요.”

 그 치열함을 위해 그는 자신을 들볶는다. “나는 나를 괴롭히기 위해 태어난 인간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누구나 그렇겠지만 시를 쓸 때 그는 완벽주의에 사로잡힌다.

 “결벽증이 생기는 듯해요. 한 구절을 계속 읽으면 구절이 계속 머릿속에 있고, 한 가지 생각을 붙잡고 반복적으로 생각에 접근하거든요.”

 고생하는 건 몸이다. 첫 시집을 쓸 때다. 고시원에 틀어박혀 12시간을 앉아서 내리 시만 썼다. 그때는 시를 쓰는 게 너무 좋아서 자다가도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 써야 했다.

 “나는 즐거운 데 육체적으로는 고통이 생겼어요. 너무 심한 두통에 시달렸죠. 뇌졸중을 앓는 줄 알았을 정도니까. 어느 날 계단을 올라가다 마비증상이 오기도 했어요. 글을 쉬니까 좀 나아지더군요.”

 그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인테리어 디자이너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보람을 느끼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속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문학과 가까워졌죠.”

 그렇게 시작된 시인으로서 그의 궤적은 한국 시의 영토를 넓혀 왔다. 그의 시는 난해하다는 꼬리표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내일은 프로’를 비롯해 올 5월 나온 시집 『육체쇼와 전집』에 실린 근작은 조금 달라졌다는 평가다. 예전에 보였던 치열한 뜨거움이 가신 듯하지만 화자의 깊이가 깊어지며 ‘인생’이 들어가 있다는 중평이다. 본심 심사위원인 김사인 시인은 “황병승이 새로운 시기를 건너는 듯하다”고 했다.

 “생활고에 치이다 보니 시에만 집중할 수 없었죠. 생활이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소재로부터 벗어나 생활과 나 자신에 집중하려고 노력한 영향도 있을 겁니다.”

 두드러진 변화는 화법이다. 3인칭이던 화법이 1인칭으로 바뀌면서 여러 인물이 등장했던 기존의 작품과 달리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3인칭 화자로 시를 쓰는 데 싫증이 나기도 했고 내밀한 자기고백이 하고 싶기도 했다”는 게 이유다.

 올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내일은 프로’도 그렇다. 소설을 쓰는 화자를 통해 자신의 실패한 생활을 글로 옮기는 데 실패하는 참담한 상황을 그려낸 이 작품에서도 1인칭 화자는 독자를 시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수상작이 실린 세 번째 시집이 나올 때까지 6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한꺼번에 닥쳐왔고 슬럼프가 이어진 탓”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수상 소감이 더 와 닿는다.

 “폭염 속에서 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물을 먹었고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시 물 위에 올라와 폭염 속에서 물을 바라보고 있다. 묘한 감정이다.”

 지친 목을 축였으니 그는 다시 치열해질 것이다. 그의 정의대로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안겨주는, 여전히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인 시’를 쓰면서.

'내일은 프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나는 보여주고자 하였지요, 다양한 각도에서의 실패를. 독자들은 보았을까, 내가 보여주고자 한 실패. 보지 못했지…… 나는 결국 실패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쓸모없는 독자들이여, 당신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불빛 속에서, 아름답게 흐르는 강물을, 다리 위에서, 보고 있었지. 어둠 속에서, 나는 밤낮으로 출렁거리며, 다리 아래서, 보여주고자 하였는데, 괴로워…… 그러게 말입니다.

 실패한 자로서, 실패의 고통을 안겨주는 이 페이지에서, 당신들이 수시로 드나들 이 페이지에서, 페이지가 너덜거리도록 당신들과 만나는 고통 속에서,

 “나는 실패를 보여주고자 하였으나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네. 이거 이거, 실패를 보여주기에는 역시 역부족이란 말인가. 괴롭습니다, 괴로워요……” 라고 말이지요

찬비가 얼굴을 때리는 새벽, 나는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고 싶었습니다

 죽은 할머니에게라도 할아버지에게라도

 거리의 부랑자들과 매춘부들에게라도

 웃거나 울지 않으면서

 침묵하거나 침묵하지 않으면서

 술집에서 만난 보이와 건달 녀석에게라도

 나는 전화기를 들고 아무 번호나 눌러대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모두들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누구시죠? 누구십니까?

이렇게 ‘영원’이 되고 말겠지

 찬비를 맞으며

 삼일 만에 귀가했을 때

 집안은 어두웠고 여자는 침울한 얼굴로

 식탁에 앉아있었습니다

 우리는 약속을 했지요

 지난달에도 지지난달에도

 우리는 약속에 도달하기 위해

 서로를 철사로 꽁꽁 묶었고

 우리는 서로에게 석고를 들이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석고가 부서져 날리는 새벽

 (하략)

하현옥 기자

◆황병승=1970년 서울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명지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석사 수료. 2003년 ‘파라21’로 등단.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 『육체쇼와 전집』. 박인환문학상 수상.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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