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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정리법과 신청기업 속출의 문젯점|「역용」으로 퇴색하는 「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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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16억2천만원의 사채상환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던 풍한산업이 사채권자들과의 수차에 걸친 채환방법 교섭을 타결하지 못한 채 법원에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을 낸데 비해 같은 사채사용업체인 삼학산업은 이자탕감 및 회수기일 연기 등 사채권자들의 원만한 반응으로 재생의 길을 밟게된 대조적 사실이 재계의 화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채권·채무자간의 분규와 그 결과적 현상으로서 회사정리법에 따라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을 내는 회사는 앞으로도 속출할 것이 우려되고있다.
그런데 회사정리절차 개시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채권이 소멸되지는 않더라도 정리절차가 끝날 때까지 유예되고 단기회수를 예정했던 자금이 장기 고정화하기 때문에 피해를 받게될 사채권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인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배태되는 것이다.
회사정리법의 골격은 ①정리절차개시가 결정되면 종료시까지 정리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자본금의 감소 신주나 사채발행·합병·해산·조직변경·이익배당 또는 이자의 지불을 할 수 없으며 ②법원은 개시결정과 동시에 ▲1인 또는 수인의 관리인 ▲정비채권 정리담보권과 주식의 신고기간(2주 이상 4개월 이내) ▲제1의 관계인 집회기일(2개월 이내) ▲정리채권과 정리담보조사권의 기일 등을 지정, 법정관리에 착수하고 ③정리계획수행 또는 계획수행이 확실한 때 관리인의 신탁이나 직권에 의해 정리절차를 종결짓게 돼있다.
그리고 이 같은 회사정리법은 기업인이 선의의 관리·경영자로서 모든 차입자금이나 자본금을 당해 기업에 투입했는데도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인해 기업이 채무에 허덕일 때 이를 구제함으로써 그 기업과 채권자들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화재 등의 재해나 기업외부에서 발생한 여건의 변화 등이 기업의 정당경영을 어렵게 했을 때, 채권의 행사를 정지시켜 기업이 재생한 다음 경영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채무를 정리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법은 기업풍토의 건강성을 전제로 한 초근대적인 법률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여건처럼 기업풍토가 불건전하고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지 않아 기업재산과 기업가의 재산이 명확히 구분, 운영되지 않는 경우에는 이 법이 기업가가 사복을 채운다음 기업을 법에 내맡기는 식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외채상환의 누증, 동종기업간의 경쟁격화, 계속적인 사채의존 등 기업부실화요인 가중과 관련하여 기업의 부실요인규명 및 정리절차신청처리에 보다 과학적인 분석이 요청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 법이 남용될 경우 채권·채무자를 동시에 보호하고 산업정책적으로도 도산을 막는 입법취지에서 벗어나 일방적으로 채무자인 기업가만을 보호하고 산업정책면에서도 한정된 자금이 계속 투입됨으로써 자본의 효율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즉 각계전문가들은 대체로 법의 목적이나 체제의 타당성을 인정하지만 그 응용의 묘를 기해야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그 요지를 간추려보면(경칭약)

<악용가능성 많아 운용의 묘 찾아야, 신청하게된 원인과 책임 분석부터>
◇차낙훈(고대교수)=회사측이 정리절차를 밟고싶어도 법원이 이를 결정하지 않으면 악용될 수 없다.
오히려 차원을 높여 업계가 회사정리단계에 도달하게 된 원인과 책임에 대한 분석이 더욱 필요하다.
현재 법 자체에 결함이 노출된 것은 없으며 조선맥주가 최초로 적용되어 선용된 것처럼 운용의 묘를 기하면 된다.
◇홍승만(변호사)=차관·은행대출·사채자금 등을 끌어다 부동산 등 개인재산에 유용하고 회사정리절차를 신청하는 예가 많다.
법체제나 입법 의도로 보아 좋은 법이나 악용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법원이 기업부실화의 사실여부를 잘 가려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경제여건의 변화, 기업부채의 과중현상은 오히려 이 법의 필요성을 더해주는 것이다.
◇문상철(조흥은행장)=금융기관은 「금융기관연체대출」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의해 성업공사에 이관, 정리절차를 밟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파제가 있다.
그러나 무담보금융인 사채는 경기변동이 심할 때 위험성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방치하면 파산할 것을 법정관리해서 채권·채무자를 보호한 예가 많으나 근본적으로 위험이 높은 사채업자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면 될 것이다.
◇나익진(동아무역사장)=처음부터 고의로 이 법을 악용하려는 경우는 없으며 기업이 기울어지면 수습책의 한 방편으로 정리절차를 밟는 예는 많다고 본다.
정리절차를 밟으면 기업가는 유리하나 채권자 등 부수적인 반응은 심각하며 속출할 때는 그 영향이 큰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의 여건으로는 매출가능성이 많다.
근본적으로 면밀한 계획없이 희망적인 관찰로 사업에 착수한 사람이나 이를 지원해온 정부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세금공세 등이 심해 사업의욕을 잃게 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정리절차개시결정은 중요산업 등으로 엄선하고 기타사업은 자체적으로 해결토록 해야한다.
◇윤태엽(전경련사무국장)=이 법이 아니더라도 주식회사가 유한책임이기 때문에 채권자를 골탕먹일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따라서 이 법이 조장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으며 국민경제, 종업원의 입장 등에서 선용되길 바란다.
이 법이 있음으로써 기업재생이 가능한 것인데 사채업자의 입장에서는 은행채권 등이 우선하는데 따라 채권회수가 더 늦어지는 것은 하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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