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돌자 상봉 걷어찬 북 … 여야 "천륜 끊는 일" 한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22일 오후 상봉 대상자인 김명도씨(90)가 부인 박현수씨(86)와 함께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낙담한 표정을 한 채 북한 가족의 생사확인서를 다시 읽어보고 있다. [뉴스1]

북한의 일방적인 이산가족상봉 무산조치를 계기로 남북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다. 금강산 이산가족상봉(25~30일) 연기를 일방 통보했던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2일에도 서기국 보도를 내고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 보수패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통일부가 상봉 연기에 대해 “반인륜적 행위”라며 유감 입장을 낸 데 대해서도 “우리에 대한 반감과 악의를 선동해 북남 관계 개선의 흐름을 차단하려는 반민족적 기도의 발로”라고 비난했다.

 상봉을 불과 나흘 앞두고 나온 북한의 거부 입장 발표는 일단 남북 관계 주도권을 남측에 빼앗겼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조평통은 21일 성명에서 “우리의 성의 있는 노력에 의해 이뤄진 북남 관계 진전을 저들의 ‘원칙론’의 결과로 광고하는 것이야말로 파렴치한 날강도 행위”라고 비난했다. 정부는 대북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북한이 관영매체를 총동원해 선전전을 펼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도 22일 “천륜을 끊는 일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상봉 무산에 대해서는 여야가 함께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개성공단이 재가동(16일)에 들어가자 북한이 곧바로 이산가족상봉 테이블을 걷어찬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공단 정상화란 목표를 이루자 상봉 카드는 다시 주머니에 넣고 금강산 관광 재개 협상과 맞바꾸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조평통이 상봉 거부 성명에 개성공단을 전혀 거론되지 않는 건 앞으로는 금강산 관광에 치중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로 시작된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과 도발 움직임은 4월 초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최고조를 맞았다. 정부가 4월 11일 대북성명으로 회담을 제안하자 북한 조평통은 6월 6일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회담과 이산가족상봉을 언급하며 호응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다시 대치 국면에 돌입하게 됐다. 20일 방북해 금강산 상봉을 준비해 온 우리 선발대 13명과 시설보수인력 등 75명은 22일 오후 귀환했다.

 정부는 북한이 이석기 사태까지 거론해 ‘애국인사 탄압’ 운운한 데 대해 단호히 대응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하지만 실향민들의 상심을 고려해 조속한 상봉행사를 북측에 설득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정부 당국자는 “올가을 관광시즌을 이미 놓친 만큼 북한이 설 명절 상봉 등을 통해 내년 봄 금강산 관광 재개 카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관련기사
▶ 정부 "이산가족 화상상봉·추가상봉 당장 계획 없어"
▶ 北 "南 원칙론, 속에 칼 품고 억지웃음 간사·교활" 비난
▶ 이산가족 상봉 실무 선발대 13명 전원 철수
▶ "평생 기다렸는데 연기라니…" 90세 할아버니 한숨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