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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민주당 판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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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김한길 민주당 대표=2006년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한 국정원 전면개정안 정도의 개혁안은 내놓으셔야 합니다. 당시 당 대표가 바로 대통령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그렇게 절실한 거였다면 왜 민주당이 집권한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시절엔 개혁을 안 했나요. 국내파트도 없애지 못하고 국정원 수사권도 존치시켰잖습니까.

 16일 국회 사랑재에서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주고받은 말이다. 대화를 듣고 생각했다. 당 대표가 노숙 투쟁을 하면서까지 얻어내고 싶은 절실한 것, 국정원 개혁이 실은 민주당의 것만은 아니었구나. 국정원 개혁의 깃발. 그건 한나라당을 식별하는 것이었다가, 정권이 바뀌자 민주당의 표식이 되기도 하고, 언젠가 새누리당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민주당을 취재하는 기자로서 ‘그럼 변하지 않는 민주당만의 가치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겨났다. 그래서 대선 과정을 되짚어봤다. 대통령 선거야말로 당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2012년 12월 11일(D-8). 문재인 후보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복무제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병역은 이 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위다. 그저 잠시 전쟁을 쉬고 있는 한국에서 모든 남자가, 그런 남자를 아들로 두고 애인으로 삼고 있는 모든 여자가, 대부분의 국민이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 병역을 감히 양심을 내세워 거부하는 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준다?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민주당을 판별하는 기준을 드디어 찾아냈다고 안심하던 때에 난 또다시 난해한 표식을 만났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3일(D-6). 문재인 캠프 종교특위는 “민주당은 동성애·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공약했다.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인권의식이 앞서 있다고 주장하지만, 양심적 병역 거부자보다 훨씬 많은 동성애자의 인권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싸움 상대로서 새누리당의 카운터파트가 될지 모르지만, 가치로선 분간이 잘 안 된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 개개인은 당의 공약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 본지는 총선 직후 19대 의원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질문에 응한 민주당 의원 84명 중 31명이 동성애자에 대한 (결혼 등) 법적 보장에 동의했고, 49명이 법적 보장은 어렵더라도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답했다.

 구성원 95%가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하는데, 당이 도출한 공약은 동성애 배척으로 나온 셈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이기기 위해선 종교인의 표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모든 걸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옹호와 동성애 반대가 한 정당에서 공존하고, 그것이 당의 정체성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당명과 당 로고, 당 강령까지 계속 바꾸는 통에 민주당을 판별해내는 방법은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