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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신… 인형극의「꼭둑각시」-서연범<경희대 교수·국어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인물은「홍동지」다. 용강에 사는「이시미」가 새를 보러 가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먹고 박 첨지마저 삼키려 할 때 홍 동지가 달려와서 구출해 낸다. 하늘에 산다고 하는「영노」라는 괴물은 돌이고 사람이고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데 이 괴물도 홍 동지가 죽여 버린다.
이시미나 영노는 모두 상상적인 동물로서 이러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은 홍 동지가 주력을 지닌 「샤먼」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있다.
그런데 이러한 괴물을 물리칠 수 있는 주력은 홍 동지의 어디에 있을까. 이 인형은 온몸이 빨갛고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샤먼」적인 면에서 볼 때 붉은 색은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색깔로 여겨지고 있다. 홍 동지의 주력은 온몸이 붉다고 하는데 있을 것이다.
홍 동지의 홍은 붉을 홍의 홍이 동음인 성 홍에 대체된 것이다.
「샤먼」들의 은어에 붉은 색을「질거바리」라고 하는데 혼신이 붉은 색을 보면 질겁을 해서 도망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러한「샤먼」적인 색채 관은 우리 생활의 여러 면에 반영되어있다..
「샤먼」이 살풀이를 할 때 화살 끝에 수수떡을 끼워서 역신을 쫓는다. 아기의 백일이나 돌에 수수떡을 해 먹는 것은 바로 역신의 침입을 예방하는데 있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문서 리에 뿌리거나 상가나 이사 간 집에서 팥죽을 쑤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샤먼」들의 무복에 홍의가 쓰이며 여자들의 저고리 소매의 끝동·섶·옷고름·댕기·이불깃 등이 붉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해산 때 금줄에다는 고추가 바로 그 색깔에 있으며 장을 담그고도 왼 새끼에 고추·숯·솔가지 등을 다는 것도 바로 색깔에 있는 것이다. 사당 같은 옛날 건축물에도 붉은 색이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붉은 색을 귀신이 무서워한다고 여겼는가.「붉다」는 불(화)이라는 명사에서 전성된 형용사이다. 이러한 주렬은 어원으로 숭화 사상에 소급될 수 있다고 본다.
대개 지금까지 홍 동지의 안면은 붉은 색깔로만 여기고 있는데 조사한 바에 의하면 30여 년 전 양평군 양수리에서 행했던 꼭두각시놀음에 있어서의 홍 동지의 얼굴이 반쪽은 붉고 반쪽은 희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한 인형을「홍 동지가」라고 했는데「백가」에 있어 흰색의 뜻은「샤먼」적인 면에서 볼 때 붉은 색 못지 않게 귀신을 쫓는 주력을 지니고 있다
「희다」는 해의 명사에서 바뀐 것이다. 어원으로 볼 때 흰 색깔에 주력이 있다고 믿는 것은 태양 숭배사상과 연결된다.
꼭두각시의「꼭둑」은 15세기 문헌에 의하면 환, 괴뢰의 두 뜻을 지니고 있다.
「각시」는 갓(여)과 씨(시)가 합친 말로서 소녀, 신부, 젊은 여자의 뜻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샤먼」적인 면에서 각시는 수의 뜻을 지니고 있다. 처녀가 죽어서 된 귀신이라는 손 각시, 문각시, 부직각시(아궁이 각시)등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이 각시는 억의 뜻을 지니고 있다. 꼭둑각시를 추상명사로 볼 때에 환녀가 되고 구상명사로 볼 때에는 인형의 뜻을 지닌 괴뢰여로 볼 수 있는데 공통되는 것은 모두 사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샤먼」 적인 면에서는 환신, 괴뢰신의 뜻을 지닌다.
그런데 때에 있어서 꼭둑각시는 천대를 받고 다시 쫓김을 당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꼭둑각시의 원초적인 것은 역녀, 즉 역신이라 하겠다.
「도섭 부리다」「도섭」은 문헌에「환」의 의로 나오는데 환과 업과의 복합명사이고「환빈비」도 환과 아비와의 복합어인데 업·압이 모두 부의 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도깨비는 남성의 환신 임에 반하여 꼭둑각시는 여성의 환신이라 하겠다. 대개 도깨비는 장난기가 심한 좋은 신으로도 여겨지지만 꼭두각시는 역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대어에서도「꼭둑각시」는 좋지 않은 면에서 씌여 지고 있다.
삼한시대에도 인형이「샤먼」적인 면에서 씌어지고 있음이 문헌에도 나타나지만 지금도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은 꼭두각시놀음의 기원이 귀신을 쫓는 「샤머니즘」적인데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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