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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부터 바오로 2세까지 … 2000년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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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황은 바티칸의 국가수반인 동시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전 세계 천주교를 다스리는 종교적 수장이라는 두 모습을 함께 갖고 있다. 그 점에서 일반 정치 지도자와는 선명하게 구분된다. 실제로 지난 2000년간 세계 역사에 끼친 영향력은 국가수반이나 종교 지도자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우선 교황이 갖는 역할과 권능은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측면이 중요하다.

"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도의 으뜸으로 갈릴레아의 어부 베드로를 임명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언명했다. 그 전통 위에 현대의 교황이 서 있다. 교황을 뜻하는 영어 'pope'는 '아버지'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papa'에서 나왔다. 전 세계 10억여 명 신자의 정신적 아버지라는 뜻이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초창기에는 '교화황(敎化皇)'이라는 말을 사용했고, 그 뒤 1962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황'으로 통일했다.

교황청의 긴 역사에는 그만큼 굴곡도 많았고 교황의 상징성이 부침을 거듭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1095년 시작된 십자군전쟁은 7만여 명의 유대인.이슬람 교도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또 이노센트 4세는 1252년 "신앙의 순수성을 수호한다"며 마녀사냥을 승인해 한동안 유럽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듬해 신대륙 정복을 옹호(알렉산더 6세)한 적도 있다. 20세기 들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3월 '회상과 화해, 교회의 과거 범죄'를 발표해 가톨릭 교회의 과거 잘못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공식 인정하는 결단을 내렸다. 이 같은 '과거사 사과'를 통해 교황의 정신적 권위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국내 480만 명 천주교 신자를 포함해 지구촌에 10억여 명에 이르는 신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를 더 각별히 추모하게 됐다.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현대의 교황은 로마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에서 서유럽의 총대주교, 이탈리아의 수석주교, 바티칸의 원수, 하느님의 종 등 모두 9개의 직위를 갖고 있다. 이 중 '바티칸의 원수'교황은 주권국가 바티칸의 국가수반임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즉 각국에 대사를 파견해 교회의 신앙과 규율이 준수되도록 하고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현대 교황의 위상은 국가수반 그 이상이다. 지구촌의 지성인이자 정신적 지도자, 존경받는 정치인, 게다가 전 세계 미디어가 관심을 쏟는 '수퍼 스타'이기도 하다. 지구촌 각 지역의 분쟁과 참사, 줄기세포 연구.낙태수술.피임 등 과학과 생명 존엄성의 상관관계에 이르기까지 교황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현안에 대한 영향력은 문서로 그때 그때 표현된다. 회칙.권고.교황령.교황교서 등 다양한 형태의 문서가 그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기간 중 14개의 회칙, 15개의 권고, 11개의 교황령, 45개의 교황교서를 발표했다.

이런 크나 큰 위상은 역설적으로 분열과 갈등으로 치달아온 현대사회가 요구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인사이드 바티칸]의 저자 토머스 리스 신부는 "현대사회가 분쟁으로 치달으면서, 거대한 정신적 위엄을 가진 지도자에 대한 갈망은 오히려 더 늘었다. 교황 바오로 2세는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 성공적인 교황직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즉 전 세계 교회에 대해 교도권(敎導權).신품권(神品權).통치권을 가진 교황은 공로와 과오를 함께 가진 역사 속의 교황 역할을 뛰어넘어 '지구촌의 영적 스승'으로 역할을 극대화한 것이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핵심 메시지인 화해와 용서를 실천한 결과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흥미롭게도 바티칸의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대는 불과 120명 수준. 이런 상황에서 교황이 가진 정신적 권위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교계의 전망이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중앙일보 기사 김종수 신부가 감수

중앙일보 4월 4일자에 실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관련 기사들은 김종수 신부(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전 사무총장)의 감수를 거쳤습니다. 가톨릭대 교수이기도 한 김 신부는 3일 저녁 중앙일보 편집국에서 중앙일보 기자들이 작성한 관련 기사들 중 가톨릭 교회의 관습과 고유 용어 등에 대해 검토해주었습니다. 김 신부와 한국 천주교회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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