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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등 돌린 한·중 마음부터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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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승욱
도쿄 특파원

지난 7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의 압권은 일본의 프레젠테이션이었다. 도쿄와 경쟁했던 이스탄불이나 마드리드의 작품과는 격이 달랐다.

 비결은 ‘메이드 인 일본’의 섬세함이었다. 경쟁 도시와는 달리 도쿄의 프레젠테이션은 모두 IOC 공용어인 영어나 프랑스어로 진행됐다. 왕족과 총리, 지진 피해 지역 출신 장애인 육상선수, 펜싱 국가대표, 프랑스인 아버지를 둔 여성 아나운서, 도쿄도지사 등으로 구성된 멤버 구성도 짜임새가 있었다. 손동작을 지도하는 전문 트레이너가 따라붙었고, 멤버 전원이 “ 일본의 열정을 느끼게 하라”는 등의 세부 지침을 충실히 따랐다.

 일본 언론들은 “‘팀 일본’의 ‘오모테나시’(친절한 대접)가 IOC 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자평했다. 비록 “오염수의 영향은 원전 항만 내부에서 완전 차단돼 있다”는 발언이 거짓말 논란을 낳았지만 아베 신조 총리의 열정도 대단했다.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계속 뭔가를 ‘웅얼웅얼’대며 오염수 관련 답변 연습을 계속했다. ‘올림픽 유치’라는 날개를 달고 귀국했지만 아베 총리에겐 요즘 “연설을 연습할 것이라면 한국·중국을 향해 담화 연습을 하는 게 어떠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이웃 나라와의 갈등은 풀릴 기미가 없는데 총리가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올인하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상대국을 공격할 수 있는 권리다. 일본의 역대 정부는 “평화헌법을 가진 일본은 행사할 수 없다”는 해석을 유지했지만 아베는 그 해석을 바꾸려 한다. 개헌 대신 헌법 해석 변경이란 간단한 방법으로 족쇄를 풀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17일자 사설에서 “헌법의 근간을 정권이 독단적으로 바꿔선 안 된다”며 정면으로 아베 총리를 비난했다.

 또 “총리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성급히 추진하면 주변국과의 관계를 한층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끈질긴 외교 노력’을 강조했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은 개헌 추진의 변수가 아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아베 총리가 먼저 할 일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 건 달라진 안보 환경 때문이지 군국주의를 되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고 주변국을 친절하게 설득하는 일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 내엔 ‘양국 정부의 긴밀한 협력하에 추진된다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란 주장도 있다.

 IOC 위원들의 마음을 잡으려 연설을 연습했던 마음으로, 등 돌린 이웃의 마음을 잡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승욱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