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해수부 이전, 선심 공약에 휘둘릴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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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주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의 세종시행을 둘러싼 당정협의는 갈지자 국정 운영의 극치를 보여줬다. 협의가 끝난 뒤 황영철 새누리당 안전행정위원회 간사는 “해수부와 미래부의 세종청사 이전에 (당정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시간 만에 새누리당은 “확정된 바 없다”며 발을 뺐다. 추석 지역민심을 이유로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이 반발하자 손바닥 뒤집듯 뒤집은 것이다. 아무리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해도 지나친 해프닝이다. 중앙정부의 청사 이전까지 지역정서와 당리당략에 따라야 한다는 얘긴가.

 해수부 이전 문제는 지역 공약사업 추진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지난해 부산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해수부 청사를 부산에 두는 방안에 대해 “그런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선거 과정에서 지역민심을 잡기 위한 언급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해수부의 세종시행은 법으로 규정된 사안이다. 부산으로 보내려면 법을 바꿔야 한다. 다른 부처와 협의 등 효율로 따져도 세종시행이 맞다. 해수부 장관은 이미 세종시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를 다 무시하고 해수부를 부산에 보냈다 치자. 당장 목포와 인천부터 반발할 것이다. “부산만 짠물이고 우린 민물이냐”며 비슷한 규모의 지역사업을 달라고 아우성칠 것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놓고 부산과 경합 중인 대구는 “부산에 해수부를 줬으니 신공항은 우리에게 달라”고 나설 것이다. 부산 민심 잡으려다 전국 민심이 돌아서는 재앙을 맞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7월 정부는 96개 신규 사업의 예비 타당성 조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 공약사업 이행 원칙을 밝힌 바 있다. 타당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다음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게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 선심성 지역 공약사업까지 다 들어줬다간 나라의 곳간이 거덜나게 된다. 그렇다고 어디는 들어주고 어디는 뺄 수도 없다. 지역민심이나 정치적 고려보다 원칙과 규정, 효율과 타당성을 우선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