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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간다』 펴낸 이영광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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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영광은 ‘시인님’이란 호칭을 들으면 간이 오그라든다고 했다. ‘시인’이란 말 속에 높고 낮음이 있으므로 ‘님’을 붙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어느 날인가, 이영광(48) 시인은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마치고 그냥 들어갈 수 없어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막걸리 한 병을 마저 마시는 시인 앞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바삐 지나갔다. 흘끔흘끔 시인을 바라보는데 눈빛에 멸시가 느껴졌다.

 아마도 그들은, 그리고 우리는 낙오되지 않기 위해 그 인파에 섞여 걸었을 것이다. 지지 않기 위해, 살아 남기 위한 행렬이다.

 시인은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겠죠. 그런데 저는 그들이 더 걱정됐어요”라고 말한다. 이영광 시인은 거꾸로 걷기로 한다. 그는 기꺼이 지고, 기꺼이 죽기로 한다. 신작시집 『나무는 간다』(창비)는 지는 것 속에서 삶의 가능성을 바라본 시인의 처절한 행보다. 세 번째 시집 『아픈 천국』 이후 3년 만이며, 2011년 미당문학상 수상 작품 ‘저녁은 모든 희망을’을 포함해 30편을 수록했다.

  새 시집을 읽어내기 위한 열쇠는 표제작 ‘나무는 간다’다. 시인은 이 시가 좀 밋밋해 보이지만 약간의 의외성이 있고 요란하지 않아 애착이 간다고 했다. 나무들은 뒤틀리고 솟구치면서, 얼음을 헤치고 바람의 포승을 끊고, 터지는 제자리 걸음으로 간다.

 “겨울나무가 봄을 맞이하면서 숲을 이루는 과정을 쓴 것입니다. 자신도 잘 모르는 곳, 어떤 한계로 정신을 잃고 힘겹게 나아가는 과정이죠. 온통 적들밖에 없는데 나무의 내면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나무는 시집에 실린 다른 시들의 시적 주체와 닮았어요.”

 시인의 말처럼, 시들은 ‘지는 길’과 ‘죽음의 문’이란 한계로 힘겹게 걸어간다. ‘자꾸 죽자 자꾸 죽자/죽기 전에’ (오일장)라고 다짐하고,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나는 내가 좋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고 노래한다. 시인은 죽기 전에 자꾸 죽어보는 연습을 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세속의 욕망을 누를 수 있다.

 “문학은 경쟁하면서 사는 것을 잘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욕망을 억지로라도 누르면서 성찰하는 활동이니까요. 살지 말고 죽자고 하거나, 이기지 말고 지자고 하는 것은 문학이 가진 고유의 성격인 거죠.”

 이 시인은 올 초 많이 아팠다. 맹장염이 늑막염으로 번져 큰 수술을 했다. 시인은 “조금씩 늙어가는 것 같다. 글쟁이들은 건강관리를 잘 안하니까”라며 서글퍼했다. 사실 지난 몇 년 그는 현실적인 것을 내려놓고 오로지 시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 2년 전 미당문학상을 받을 때 “지금 절정의 지점에 도달해 있다(문학평론가 이광호)”는 평을 들었으니, 그 고초가 눈에 선하다.

 “2006년 미당을 연구하면서 시는 내면의 어둠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일이고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을 요구하는 일인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몸으로 시를 쓴다’(문학평론가 함돈규)는 평은 이영광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 시인은 스스로를 ‘빈틈주의자’라고 말한다. 명징한 의식이 물러가고 그 빈틈으로 영감이 깃든 말을 낚아챈다. 때론 적당한 취기가 빈틈을 열어줄 때도 있다고 했다. 흐물흐물해지면 계산하려는 마음이 가라앉고 어떤 각성의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시인이 몸으로 쓴다는 말은 그래서 무의식으로 쓴다는 말이다.

 “아리송한 것은, 몸으로 쓰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가예요. 그런 식으로 시에 나를 던지고 있는가 생각하면 자신이 없어질 때가 많네요.”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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