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전두환 장남 재국씨 "가족 대표해 국민께 사죄" 2분 사과 … 추징금 1672억 완납 계획 밝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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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골목 성명’ … 2013년 ‘검찰청 성명’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95년 12월 2일 연희동 자택 앞 골목에서 당시 검찰의 전면 재수사에 대해 반발하며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왼쪽). 이후 18년이 지난 10일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미납추징금을 완납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한편 재국씨는 95년 골목성명 원고를 작성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중앙포토·뉴스1]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법정. 전두환(82·당시 66)·노태우(81·당시 65) 전 대통령에게 내란 및 비자금 사건에 대한 유죄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2205억원, 노 전 대통령은 2628억원의 추징금도 확정됐다.

 그로부터 16년5개월여가 흐른 10일 오후 3시.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54)씨가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에 서서 ‘국민 여러분께 사죄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추징금 미납과 관련해 나온 전 전 대통령 측의 첫 대국민 사과는 2분 동안 이어졌다. 재국씨는 “미납 추징금 1672억원 전액을 자진 납부하겠다”며 시공사 사옥 등 18개의 주요 납부 재산 목록도 제시했다. 추징금을 놓고 벌여온 검찰과 전 전 대통령 간의 샅바싸움에 종지부가 찍히는 순간이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추징금을 완납한 데 이어 6일의 시차를 두고 전 전 대통령도 추징금을 완납함으로써 현대사의 한 장이 마무리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전·노 전 대통령은 대법원 선고가 난 그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고 추징금 납부 의무만 남아 있었다. 이날 제네시스 차량으로 혼자 나온 재국씨는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채 굳은 표정으로 “추징금 환수 문제와 관련해 그간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가족 모두를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한 뒤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장남이 국민과 역사 앞에 사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가 나선 건 일가의 ‘장남’이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재국씨로선 1996년 아버지의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소환조사를 받은 지 17년 만의 검찰청사 출두였다.

 그는 “부친은 진작 저희가 할 수 있는 한 당국의 조치에 최대한 협조하라는 말씀을 하셨다”며 “저희의 부족함과 현실적 난관에 부딪혀 해결이 늦어진 데 대해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국씨는 또 “저희 가족 모두는 추징금 완납 시까지 당국의 환수절차가 순조롭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 완납은 대통령의 의지와 국회의 법안 마련, 검찰의 실행력과 국민적 공감대 등 4박자가 두루 갖춰져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미납 추징금 문제에 대해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에 국회는 관련 법을 개정해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개정 법으로 강제수단을 손에 쥔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자녀들을 전방위로 압박했고 800억~900억원대의 재산을 압류하는 성과를 냈다.

 서울중앙지검 미납추징금특별수사팀장인 김형준 부장검사는 “과거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대한민국의 미래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팀원들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박원호(정치학과) 서울대 교수는 “전·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은 역사와 국민에게 진 빚이나 다름없다”며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완납이 이뤄진 것은 잘된 일”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다만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적 정황들에 대해선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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