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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축소지향의 '동아시아 패러독스'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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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앙일보·JTBC·유민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제16회 중앙글로벌포럼은 동아시아 새 질서를 모색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참가자들은 한·중·일과 미국이 참여해 각축하는 동아시아에서 협력적인 질서를 창출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다각도로 모색했다. 역내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심화되는데 영토와 역사를 둘러싼 갈등은 오히려 증폭되는 이른바 ‘동아시아 패러독스’를 어떻게 풀어갈지를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날 토론은 다양하고 깊이 있는 의견들이 제시됨으로써 한·일, 한·중 사이의 갈등과 미·중 사이의 경쟁이 극단적 대립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을 줬다.

 예컨대 박철희 서울대 교수와 빌란트 바그너 슈피겔 뉴델리 지국장은 ‘동아시아에서 역사와 영토 분쟁에서 최종적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말고 문제가 발생하면 각국 지도자들이 축소지향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 추출해 그런 문제들은 모두 동결하는 일종의 ‘배드뱅크’(부실채권전담은행)가 필요하다’는 흥미로운 제안을 내놨다.

 그 밖에도 20세기 독일과 프랑스 사이의 분쟁과 갈등의 해결 과정을 고찰하면서 발표자들은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이나 독일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처럼 정치 지도자들이 동아시아에서 화해를 위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시민사회가 먼저 나서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반면 ‘ 자칫 5년이나 10년 안에 분쟁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정치인이 생겨날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이런 다양한 의견 제시 뒤에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한 것은 ‘대화의 재개’였다. 박철희 교수는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 대화의 방법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고 바그너 지국장도 “헬싱키 프로세스와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갈등을 진정시키고 화해를 촉진하는 데 대화 이외의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하지만 동시에 매우 절실한 해법이 아닐 수 없다.

 참가자들은 동아시아에서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 통합이 가능한지도 모색했다. 결론은 없었지만 이런저런 분석과 전망이 제시됐다. 중앙글로벌포럼이라는 자리를 통해 발제자와 토론자 및 청중들은 동아시아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갈지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이런 기회들이 모여서 ‘동아시아 패러독스’가 동아시아의 안정적 번영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찾기를 기대한다.

 오늘날 동아시아의 문제는 세계 문제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빠른 경제성장을 토대로 세계의 중심지역으로 부상해온 동아시아에서 각국 간 각축과 갈등이 확산한다면 자칫 지구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할 위험성이 크다. 각국 정부는 물론 각 나라 시민들이 나서 동아시아 전체가 직면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