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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분쟁 통해 이득 보려는 정치인 나올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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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중앙글로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단상 왼쪽부터 배명복 중앙일보 논설위원, 빌란트 바그너 슈피겔 뉴델리지국장, 박철희 서울대 교수, 세바스티앵 팔레티 르피가로 서울 특파원, 가루베 겐스케 지지통신 해설위원장,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강정현 기자]

동아시아 패러독스. 한·중·일 3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은 증대하는데도 정치적 협력은 오히려 지체되고 갈등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중앙글로벌포럼(주제:동아시아의 지역 통합과 협력을 위한 새로운 체제 구축)에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또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관계를 놓고 토론했다.

 ◆역사·영토분쟁의 동아시아 패러독스=전문가들은 동아시아의 화해·협력도, 또 못할 경우 맞게 될 위기도 유럽에서 답을 구했다.

 1963년 엘리제 조약 등 일련의 독일·프랑스 화해 과정이 모범 사례로 제시됐다. 빌란트 바그너 슈피겔 뉴델리지국장은 “진정한 화해가 있기 위해선 콘라트 아데나워와 샤를 드골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정치인들이 위태로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통해서, 중국이나 한국 정치인들이 역사를 이용해 자신들의 통치나 지배를 적법화하고 국내 정치를 덮고자 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세바스티앵 팔레티 르피가로 서울특파원은 지금의 동아시아와, 독일의 부상 이후 제1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유럽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유럽 주요국들은 분쟁을 통한 이득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동아시아는 아직 그런 국면은 아니지만 5년 이내, 10년 이내에 (그런) 정치인들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동아시아 패러독스 해소를 위해선 역사·영토 분쟁에서 최종적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양국 지도자들이 축소지향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바그너 지국장은 ‘배드뱅크(부실채권전담은행)’ 방식을 내놓았다. 서로 간에 동의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 추출하고 그 문제에 관한 한 현 상태대로 동결하자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 건 역내 대화의 재개다. “대화를 하지 않는 게 대화의 방법이 돼선 안 되겠다”(박철희)라고 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 주필은 “일본에서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재검토하겠다는 움직임이 있는데 유감스럽다”면서도 “고노·무라야마 담화 때 (한국은) 과연 어떤 평가를 했었나”라고 물었다.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중앙글로벌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미·중, 경쟁인가 협력인가=주펑 베이징대 교수는 ‘동아시아식 냉전시대가 열리는 게 아닌가’란 관측을 부인했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등 중국 지도부는 내부적인 문제에 더 초점을 두게 될 것”이라며 “중국은 미국의 헤게모니를 받아들이는 입장을 보였지 대체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중국이 강대국의 힘을 남용하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았다. 정재호 서울대 교수는 2018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란 전망을 인용하며 “시 주석의 첫 5년은 협력이 키워드가 되겠지만 5년이 지나면 미·중 간 힘의 전이가 이뤄지고 경쟁이 우선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틴 패클러 뉴욕타임스 도쿄지국장은 최근 일본 자위대가 미군과 실시한, 가상의 적으로부터 섬을 점령당했을 때 되찾아오는 훈련(아이언 피스트·Iron Fist)을 취재한 경험을 전하며 “가상의 적이 누군지 크게 상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5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훈련”이라고 했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한 미국 칼럼니스트의 말(“중국은 우리에게 고객이고 도전이며 기회”)을 인용하며 “기회가 도전을 압도할 수준이길 바란다”고 했다.

 ◆동아시아커뮤니티 가능한가=동아시아에서도 유럽연합(EU)과 같은 통합이 가능한가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기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세안·아세안+3·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협력체가 후보로 거론됐다. 데이비드 필링 파이낸셜타임스 아시아지국장은 “아시아엔 다양한 양자관계와 무역기구들이 있다. 그러나 무역만으론 전쟁을 예방할 수 없다”며 “EAS 구도에서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중국은 지속적으로 미국이 태평양 강국으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게 대안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론도 적지 않았다. 브라마 첼라니 인도 정책전략연구소 교수는 ▶역사갈등·민족주의 경향 해소 ▶정치·격차 축소 ▶특정국가의 헤게모니 장악 회피 등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류재훈 한겨레신문 에디터는 “미국이 유럽연합을 지지했지만 동아시아도 그럴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글=고정애·김경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일본 총리가 태평양 전쟁 당시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뜻을 표명한 담화.
◆아세안+3, EAS정상회의=아시아권에 형성된 국가협의체. 아세안+3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 EAS정상회의는 여기에 미국·러시아·인도·호주·뉴질랜드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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