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부 장려, 소득공제 환원이 최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조특법·세법개정안이 막 피어나는 기부문화의 싹을 죽인다는 비판이 거세다. 비영리민간단체(NPO) 공동회의 이일하 이사장은 “기부를 장려하되 돈 쓰임새를 감독하는 게 정부가 할일이고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라며 ‘기부금 독소조항’ 철회를 촉구했다.

굿네이버스 이일하 회장이 기부를 위축하는 세법 조항을 바로잡자고 강조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올 1월 기부금 ‘세금 폭탄법’인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이 전격 시행되자 사회복지단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 4월 조속한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을 국회에 내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섰다. 그 중심에 이일하(66·굿네이버스 회장) NPO(비영리 민간단체) 공동회의 이사장이 있다. 공동회의는 2009년 과도한 경쟁을 줄이고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 월드비전·유니세프한국위원회 등 기부단체 35개가 만들었다. 이 이사장은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입법 예고한 세법개정안이 기부 문화를 심하게 위축시킬 것”이라며 “종전의 소득공제 방식으로 되돌리든지, 그게 안 된다면 세액공제로 하되 그 비율을 15%에서 6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 세법개정안을 어떻게 보나.

 “경제적 강자한테서 세금을 더 걷으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강자가 약자를 돕는 걸 막는 방식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다. 정부가 기부자와 모금단체를 존중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 일각에서는 세금 혜택을 보려 기부하는 게 옳은 거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기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책임감의 발로다. 그렇다고 남에게 돈을 거저 주려고 기부하는 것도 아니다. 고액기부자들은 얼마만큼 세금을 돌려받는지 계산한다. 이렇게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세제 지원이 줄거나 사라지면 문화적 상실감을 줄 것이다. 세금을 따지고 기부금을 맞추고 이 자체가 마음의 상처를 안긴다. 제도의 묘를 살리지 않고 선의만으로 기부하라는 건 맞지 않다. 기부의 3박자는 기부단체·홍보·세제 지원이다. 기부단체·홍보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다. 세제 지원이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기부문화는 절대 확산될 수 없다.”

 -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조특법·세법개정안이 둘 다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 최선의 대안은 조특법 시행 전인 2012년 소득공제 제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국회에 계류 중인 민주당 원혜영·김영환 의원 법안이 통과돼 소득공제 2500만원 한도에서 지정기부금을 제외해야 한다. 아니면 세액공제 방식을 도입하되 공제율을 15%에서 60%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 조만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과 관련 국회의원들에게 청원서를 전달하겠다.”

 - 정부에선 고액기부자 세금 혜택이 과도하다고 하는데.

 “정부의 역할은 돈 관리를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모금단체가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도록 하는 게 정부가 할 일이지, 기부자한테서 세금 더 걷는 게 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마음껏 기부하십시오. 저희가 보상해 드립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철저히 감시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 이사장은 미국의 예를 들었다. 미국 기부단체들은 매년 국세청(IRS)에 39쪽의 보고서를 내야 한다. 돈을 어떻게 썼고 임원 월급이 얼마인지 등을 담는다. 그런데 우리는 달랑 회계·재무 보고서 한 장으로 끝이라고 한다. 그는 “선진국의 의미가 뭐냐. 기부를 장려하고 엄격히 관리하는 나라”라고 강조한다.

 - 기부금 대신 세금을 걷어 복지에 쓰자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 대사가 외국 신문에 나는 일은 드물어도 민간단체가 모금액으로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 그 나라 대통령·장관이 참석한다. 민간 기부단체의 역할이 따로 있다. 기부 문화가 위축되면 민간 외교도 함께 약화될 것이다.”

 - 기부를 더 확대하려면.

 “10년 전에는 한 해 기부자가 10만 명 늘었고 올해는 100만~130만 명 늘 전망이다. 앞으로 130만 명에서 정지할 것으로 본다. 성장세가 멈출 시점에 왔다. 이제는 고액기부가 느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1억원 기부자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매년 수천만원 내는 사람의 비율이 늘고 있다. 고액기부를 활성화하려면 유산기부나 주식기부 등 선진 기법을 도입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런 데에 세제 혜택이 없다. 우리는 기부금 세제 지원이 가장 안 돼 있는 나라다. 그나마 있던 것도 싹 깎아내리니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 기부가 선진국과 무슨 관계가 있나.

 “의아할지 모르겠으나 경제력과 국방력으로 선진국을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다. 다른 나라에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잣대다. 한국의 대외원조는 10년 전 1000억원에서 1조5000억원으로 늘었다. 이 지표로 보면 선진국이라 평가할 만하다. 그래도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이 회장은 19 73년부터 10년간 성남사회복지관장으로 일했고 83년 기부단체 일을 시작했다. 국제구호개발NGO인 월드비전 개발국장, 굿네이버스 사무총장 등을 거쳐 96년부터 굿네이버스 회장을 맡고 있다.

◆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세법개정안=월드비전·유니세프 등에 후원하면 지정기부금, 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학·병원등에 내면 법정기부금이 된다. 조특법은 근로자 지정기부금을 교육비·의료비·신용카드사용액·보험료 등과 합해 소득공제 한도를 2500만원으로 제한했다. 개인소득자는 지정기부금 필요경비 인정 한도를 2500만원으로 제한했다. 기획재정부가 입법예고한 세법 개정안에서 근로자의 기부금을 세액공제(15%)로 바꾼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지정기부금은 2500만원 한도에서 세액공제로, 법정기부금은 소득의 100% 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뀐다. 법정 기부금이 세금폭탄을 맞게 된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김동호·신준봉·이정봉·김혜미·이서준 기자

관련기사
▶ 누더기 기부금 세법…조특법 다르고 개정안 달라
▶ "연말 1억 성금 취소" 세금폭탄에 꺾인 고액기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