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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확고하되 주의 깊게 대처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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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논설위원

“내 경험으론 진지하게 말했을 거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했다는 발언이 알려진 직후 “그저 한 말 아닐까”라고 하자 지인 A가 정색하며 보인 반응이었다. “내가 (이 의원과 같은 계열인) NL이어서 안다.”

 문제의 비밀회합 녹취록이 공개된 후 한때 말단 조직원이었다는 지인 B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2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대책 없는 얘기를 하고 있더라.”

 하기야 1980~90년대 대학에 다닌 이들이라면 이석기 그룹을 보며 누구라도 떠올릴 거다. 살아 있는 화석, 발달지체, 사이비종교 집단….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대로다. 도대체 왜?

 이들의 집단심리를 짐작할 분석이 있다. 이슬람 과격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참고는 될 터이다. 인용하면 이렇다.

 “집단구성원들이 폭력 사용을 지지하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열렬한 신봉자들만 남는 자발적 분류와 자기선택이 이뤄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에 남는 사람들은 서로를 제일 친한 친구·가족 못지않게 소중한 사람들로 여긴다. 이렇게 구성된 집단에서는 애정과 연대감으로 뭉치고 구성원끼리만 토의를 나누는 경향이 강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반향실(echo chamber) 역할을 해서 자신들의 우려나 신념은 키우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은 발전시킨다.”(『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지인 A나 B처럼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이들을 떠났을 거다. 지금의 조직은 더 극단화한 동질감으로 묶였을 테고 말이다. 과거엔 서너 명이 숨을 죽이고 하던 얘기를 이젠 100여 명이 스스럼 없이 한다지 않나.

 이들이 달라질까. 안타깝게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민혁당 사건 이후 재건된 이석기 그룹의 존재가 방증이다. 이들의 귀는 자신들이 신뢰하는 동료의 말에만 귀 기울이도록 세팅돼 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면 현명한 말로, 다르면 어리석고 터무니 없는 주장으로 여긴다. 공격받으면 오히려 더 집착한다. 요즘 이 의원과 통진당이 보이는 행태이기도 하다.

 그럼 극소수겠다고? 안타깝게도 아닌 듯하다. 근래 박원석 정의당 의원의 페이스북에서 벌어진 일이다. 박 의원이 “문제 발언이었고 국가보안법 적용이 가능하나 내란 음모 부분은 모호하다. 통진당의 해명은 전혀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흔히 얘기하는 범주 안의 말이었다. 그러나 댓글의 상당수는 이런 유였다.

 “국정원과 새누리당의 음모에 부화뇌동하지 말라.” “그냥 진보당이 싫다고 해라.” “동지를 등지느냐.”

 결국엔 종북(從北) 세력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본다. 자체 결함 때문이다. 북한은 지질함 그 자체다. 남한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다(이코노미스트). 세력이 유지되려면 새 사람이 충원돼야 하는데 누가 지금의 남한을 욕하며 지금의 북한을 추종할 수 있겠는가. 정상적 사고의 젊은이라면 말이다. 충원이 없다면 종북 세력은 시대와 더 유리될 터이고 그럴 경우 더 기괴한 모습이 될 수밖에 없다. 충원은 더 어려워지고 세력은 더 기괴해지고.

 우리의 과제는 여하히 이를 앞당기느냐다. “극단주의 세력은 내적 한계 때문에 약해질 게 분명한 만큼 장기적이고 끈기 있으면서도 확고하고 주의 깊게 봉쇄해야 한다”는 대테러전문가 마크 세이지먼의 진단에 공감한다.

 흔히들 봉쇄라면 세력의 도발만 떠올린다. 그러나 세력 안으로의 유입도 막아야 한다는 게 세이지먼의 주장이다. 요즘 식으로 비유하면 이석기 그룹에 대한 사법 절차가 도발 대처법이라면, 심정적 동조자들이 진짜 동조자로 바뀌지 않도록 절차를 공명정대하게 해야 한다는 게 유입 대처법이다. 한마디로 ‘이석기’가 아니었던 이들을 몰아세워 ‘이석기’로 만드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얘기다. 세이지먼은 그래서 ‘절제(restraint)’도 강조했다. 우린 그러고 있는가.
고정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