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68)김찬삼 여행기<호주에서 제14신>|고층의 밀림을 누비는「미니」들…「멜버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사우드·오스트레일리아」주의 서울「애들레이드」를 거처「빅토리아」주의 서울「멜버른」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 이 도시의 첫 인상은 매우 아늑하고 아름답게 보였다.「시드니」시가 현대적인 미국풍이 감돈다고 하면「멜버른」은 영국적인 분위기가 더욱 짙은 도시라고 하겠다. 이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다는 세계적인「오페라」여가수였던「멜버」의「드러매틱」한 노래라도 들려올 듯한 예술적인 향기가 넘쳐흐른다.
이 나라의 여러 도시에서 보긴 했지만 여성들의「미니·스커트」가 유독 눈을 끈다. 허벅다리의 반을 넘어섰는가 하면 골반의 위치까지 올라간 초「미니」는 너무나도 선정적이다. 장미꽃은 꽃잎을 하나하나 떨어뜨려도 끝내「섹스」를 보이지 않건만 이「멜버른」의 초 「미니」는 뇌살 시킬 것만 같다.「헤롯」왕의 눈을 뒤집히게 한 요부「살로메」의 그 아기자기한『일곱「베일」의 춤』 보다 더 관능적인「무드」가 넘친다. 이 거리에서 사귄 미국 관광객도 이곳「미니」는 너무하다고까지 하니 본 고장인 영국보다도 더 유행의 첨단을 가지 않을까.
이 나라 도시는「유럽」의 가락가 처럼 음탕하지는 않으며, 매춘부들도 벌로 없다고 하지만이 초「미니」가 음탕한 정염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낮선 이방인만의 느낌이 아닐 것이다. 꼭 겨울이 온다고 신문광고며「쇼·윈도」에는 겨울철의 의상전시도 한창이지만 실내용「미니·스커트」가 이 나라의「패션」잡지인『포스트』에 실렸는데 곧 유행될 것 같다고 하니 이렇게 되면「멜버른」거리는「스트립·쇼」를 보여 주는 셈이다. 그러나 이 반면에 반 「미녀」랄까, 땅에 닿을 만큼 치렁치렁 늘어뜨린「롱·스커트」를 입고 다니는 여성도 보인다.
그리고 남구와 동구 사람들이 많이 와서 살 뿐 아니라 관광지로서 여러 나라 사람들이 와서 흥청거리기 때문에 거리는 흡사 만국인종 박람회 장과도 같다. 싸구려 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때우기 위하여 시장엘 나갔더니 사람들이 들끓었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모두 명랑하며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가 없다고 한다. 아내의 가사를 돕기 위하여 물건을 사러 나왔다는 어떤 중년신사와 알게 되었다. 그는 자기나라 남자는 집에서 아내 일을 돕는 것을 전형적인 남편이라고 보고 있어서 어린이까지 돌봐주는가 하면 그릇 따위는 예사로 씻는다고 말했다.
내가 웃음을 띠고 넌지시 아내 일을 너무 돌봐주면 습관이 생겨서 애처가 아닌 공처가가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는 중용을 지켜 나가면서 사랑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자기 나라의 신사도며 숙녀도 라고 했다.
여러 도시나 지방에서도 많이 보았지만「멜버른」에서는 유독 늙은이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이 나라라고 늙은이가 많을 리가 없는데 이상하다 했더니 가족제도가 자식과는 별거하게 되어 있어서 홀로 살아 할 일이 없고 보니 거리를 나다니기도 하며 노부부들은 공원에 앉아서 아직도 못다 한 밀어를 속삭이는 것이었다. 돈 많은 늙은이들은 세계일주 여행을 하고 돈이 없는 늙은이들은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활 걱정은 없이 산다. 그리고 특히 과부할머니에 대해서는 봉사하는 부인들이 먹음 것을 날마다 주는가 하면 빨래까지도 해주어 아무런 불편이 없이 살게 한다. 이같이 이 나라는 사회보장이 잘 되어 있어서 여생을 즐기기 때문인지』늙은이의 표정에서는 불안의식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었다. 주름잡힌 얼굴은 화사한 웃음을 머금어 연꽃처럼 환해 보였다. 그러나 동양인의 생각으로서 한가지 쓸쓸히 보이는 것은 자식과 손자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것이었다.「시드니」시가 그렇듯이 이「멜버른」시도 교외에 주택가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문화인들이 도심지에 모여 살지 않고 교외로 흩어져 살기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교외문명」이란 말을 많이 쓴다. 즉 도시도 아니며 농촌도 아닌 교외에 자리잡은 문화라는 뜻이다. 지금「멜버른」에는 공장이 가장 많이 모이고 있을 뿐 아니라 문화와 산업에 있어서 연방에서 첫째가는 도시가 되기 위해 발전시키고 있다.
자기나라가 개척정신이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고 비관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내가 보건대 이들은 아직도 힘찬 개척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퇴폐하기 쉬운 도시사람들도 협동정신이 강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으려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산업을 일으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가락만을 누리는 낙천주의자들처럼 보이지만 굳건한 창조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